2013년 1월 28일 월요일

베드로의 역사이해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행2:23)

성령의 특별한(talis) 강림으로 모든 민족들과 땅끝까지 이르는 본격적인 증인의 시대가 출범하는 시점을 목격한 사람들의 당황과 의혹과 조롱이란 반응의 뒤범벅 속에서 사태를 수습하는 해명의 입술을 베드로가 열었다. 여기서 베드로는 역사를 푸는 열쇠 및 그것의 구체적인 사용의 대표적인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언급한다. 요지는 새 술의 취기처럼 보이는 오순절 현상이 급작스레 벌어진 충동적인 사건이 아니라 선지자로 미리 알리신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다.

베드로의 역사해석 열쇠는 예언과 성취라는 구신약 사이의 시차적인 인과를 넘어 영원한 작정의 시공간적 실현이란 차원까지 언급한다. 이는 역사의 근원이 역사 자체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보다 넓어진 안목의 반영이라 하겠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기름 부으심을 받은 메시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고 하였으나 자신도 깨닫지 못한 고백을 내뱉었던 인물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언급하자 앞장서서 저지했던 것을 보면,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던 베드로의 안목이 성장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의 결과란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유대인의 종교적 정치적 희생양이 되신 게 아니며 식민지로 전락한 약자들의 해방을 위한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분신으로 산화되신 것도 아니라, 인간의 시공간적 문맥에서 그 궁극적인 원인이 해명될 수 없도록 만세 전에 정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 특정한 시점에 이르러 펼쳐진 결과라고 보았다. 이를 근거로 인접한 원인들의 가치를 무시하고 생략하는 건 과도하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개인이든 민족이든 인류든 역사를 이해하고 해명하는 틀이 범사에 하나님과 그 뜻을 인정하는 식이어야 한다는 거다.

가까운 문맥을 푸는 감동적인 이론들이 없지가 않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도전과 응전'이란 유명한 토인비의 도식일 것이다. 상황과 인간이 확대된 관점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동인으로 '두려움'과 '수치'를 키워드로 거론하는 사가들도 있다. 물론 그런 관점들도 그것대로 유용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의 소임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가 생략된 설명은 기껏해야 철지난 훈시를 제공하고 심하게는 사실과 진리의 왜곡도 초래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베드로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인정하되 그분의 속성과 영원과 시간을 모두 고려해야 하겠다. 이는 요한과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 전체가 공감했던 역사관 되시겠다.

그런 안목으로 오늘의 교회와 세상을 읽고자 하면, 교회와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충동적인 무리들의 경박한 광기가 슬프도록 적잖게 포착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교회를 유린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스스로를 속이는 일들이 제도적 정당성과 이성적 정합성을 확보한 시대처럼 보여서다. 오늘은 베드로를 통해, 영원이란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안목도 기르고 거기서 축출된 교훈들도 바르게 깨달아 교회를 보다 잘 섬기도록 준비해야 하겠다는 소박한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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