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3일 수요일

내가 원하는 대로 남에게도

그러므로 무엇이든 사람에게 행함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모든 것들을 행하라 (마7:12)

왜? 이 사랑의 황금률이 율법이요 선지자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율법과 선지자 전체가 의존하고 있는 다른 버전의 강령이 소개되고 있는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계명이다. 하여 사랑의 황금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계명의 보다 구체화된 설명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다만 '이웃'이 '사람들'로, '네 몸과 같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사랑하라'는 '행하라'로 표현상의 미세한 변화가 있을 뿐 요지는 동일하다.

즉 타인이 나에게 해 주기를 원하는 내용과 방식대로 모든 것들을 타인에게 해 주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는 인간적인 기준에 맞추어진 사랑처럼 보여 각자의 주관적인 사랑에 성경적 면죄부를 발부하는 듯하여 뭔가 낯설다는 갸우뚱 인상을 제공할지 모르겠다. 이를 테면, 강하고 풍요롭고 독립적인 사람들은 타인에게 바라는 게 없을 수도 있고 당연히 타인에게 뭔가를 해 주어야 하는지도 모를 수 있고 아예 타인과의 소통 자체가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서다. 가학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더더욱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랑이 각자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다면 '사랑'이란 명분으로 빚어질 무질서와 혼돈이 심히 우려되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의도하신 본문의 뜻은 사랑을 개인의 검증되지 않은 기호가 발산되는 출구로 여기자는 게 아니다. 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문맥의 협조가 필요하다. 본문에 선행하는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다.' 이 구절에서 자녀의 구하는 자발성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좋은 것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시기에 '좋은 것'을 주신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을 풀어보면, 수혜자 편에서의 자율적인 기호도 존중해야 하면서, 주어지는 것의 상태도 하나님의 신적인 안목으로 보기에 좋아야 한다는 사실도 고려하며 '타인이 내게 해 주기를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타인에게 해 주라'는 의미이다.

내가 타인에게 해 주기를 기대하는 대로 타인에게 해 주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과 기호에 더 정통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실제로 내 기호여야 한다는 생각, 득하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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