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펠리칸의 교리사 1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믿고 가르치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교리는 교회의 일차적인 활동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세상의 변혁을 도모하며 종말에 이루어질 소망의 절정을 갈망한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언제나 함께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사랑이 제일이다. 믿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교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회는 언제나 학교 이상이다. 심지어 계몽주의 시대에도 교회를 학교의 기능으로 축소하지 아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마치 학교에 못지않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교리와 고백의 형태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예전은 의식과는 구별되고 교회의 정치는 어떤 기관의 조직체와 다르며 설교는 수사학과 다르며 성경 해석학은 고전학과 다르다.

기독교 교리가 역사 속에서 취한 형태는 전통이다. 전통은 교리라는 용어처럼 소통의 과정과 내용을 동시에 가리킨다. 전통은 죽은 자들의 산 신앙이며, 전통'주의'는 산 자들의 죽은 신앙이다. 교회가 믿고 가르치는 바를 고백한 것은 진공상태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교회 안팎의 공격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신약 저자들 중에 유대인이 아닌 유일한 사람은 누가이다. Hermas와 Hegesippus 외에는 어떠한 유대인 교부도 없다. 특이하다. 저스틴 마터는 사마리아 출신이고 이방인 교부이다. 문제는 헬라적 유대인과 헬라적 유대 기독인 사이의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의 연속성 문제에 대한 이해차에 있었다.

구약의 권위와 유대교/기독교 사이의 연속성 본질에 대한 논쟁은 교회사 전반을 관통하는 전통의 무엇보다 앞서 시도된 형태였다. 어거스틴: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로 보는 기독교적 이해와 교회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이해하는 것들은 그런 논쟁의 중요 사례였다. 교정과 성취라는 교리는 이어지는 세기들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되었다.

아타나시우스: 여러 교부들의 이단적인 언어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자기 편에서 활용했고, 어거스틴 역시 헬라 교부들을 펠라기안 사상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9세기의 갓초크는 어거스틴 권위에 호소했고, 동방과 서방 교부들의 논쟁도 전통의 언어를 맴돌았고 종교개혁 인물들도 카톨릭적 전통에의 충실을 보이고자 했다.

이상의 논쟁들과 이슈들은 2-3세기 기독인이 유대적 전통을 어떻게 수용해 왔는지와 직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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