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교부신학 배경 - 전승과 성경

켈리의 Early Christian Doctrines 요약.

기독교 교리라는 것은 주호 1세기 말 이래의 가톨릭적 교회의 교리이다.

오늘날의 전승: 교회 속에서 내려온 문서화되지 않은 일련의 가르침을 뜻한다.

교부들은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든 문서로 전해진 것이든 내용에 있어서 사도들이 교회에게 위탁했던 가르침을 의미했고 보다 앞선 시대에는 문화되지 않은 교회의 전래적인 가르침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 주님께서 수여했고 사도들이 선포했고 교부들이 보존한 카톨릭 교회의 본래적인 전승, 가르침, 믿음을 의미한다.

교부들에 의하면, 구약이 초대교회 교리의 규범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 구약에 교리적 권위를 부여했던 초대교회는 구약을 올바르게 해석하면 기독교의 책으로 간주함, 선지자는 실제로 그리스도 및 그의 영광을 증언하고 있다는 전제에 토대를 둔 판단이다, 2) 이러한 전제는 의식하든 안하든 특정한 주석 방법론을 사용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었다, 바나바서: 자신의 그리스도 중심의 중석을 그노시스로 칭함, 3) 이러한 원칙은 2세기 초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사도들도 이미 이러한 원칙으로 구약을 해석함.

클레멘스: 사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우리를 위한 복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명감으로 무장되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통해 온전한 확신을 얻고, 성령의 확신케 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확증을 받은 사도들은 기쁜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아갔다.

폴리캅: 바울의 빌립보서, 신앙의 초석으로 여김; 저스틴 마터: 복음서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그것들이 사도들의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전승: 1) 구약과 사도적 증언은 형식상 서로 독립되어 있었지만 교부들은 그것들의 내용이 실제로 인치하는 것으로 취급했다, 2) 사도적 증언은 사람에게 아직 전승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클레멘스: "우리 전승의 표준"이란 표현을 사용하긴 했으나 여전히 희귀했다. 폴리캅: "처음부터 전하여진 말씀", 저스틴: 예수님에 관한 예언들을 사도들이 이방에게 "전했거나" 성찬식 제정의 말씀을 "전하여 주었다"고 표현함. 3) 교회의 목회자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공인된 사도적 가르침의 수호자란 이론적 암시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레니우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여준 자들 이외의 다른 어떤 이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구원의 계획을 배운 적이 없다." 터툴리안: 교회에서 믿어지고 전파된 것들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이유는 사도들을 통해 그것을 받았고 사도들은 그것을 그리스도 통하여서 받았고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받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레니우스/터툴리안: 사도들이 가르쳐준 가르침을 지칭하려 할 때에 "전승"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레니우스: 1) 구전 전승과 원래의 계시 사이의 동일성은 계보상 사도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주교들에 의해서 보증된다, 2) 추가적인 보호막은 성령에 의해서 제공된다. 교회의 주교들은 "진리의 무오한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 veritatis certum)를 부여받은 성령의 사람이라 하였다.

터툴리안: 구전된 것이든 서신으로 된 것이든 사도적 가르침 전체를 사도적 전승(apostolorum traditio, apostolica traditio)이라 하였다.

사도적 전승의 여부를 결정하는 시금석은 교회의 관습이 아니라 사도성, 즉 사도들 혹은 그 제자들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도적 증언을 담고 있는 것으로 신뢰할 수 있다. 올바른 주석은 성경의 열쇠인 사도적 전승 혹은 가르침을 교회 속에서 손상 없이 보존해 온 교회의 대권이었다.

Irenaeus's Adversus haereses: 정통신앙 변론에서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1) 전승 자체는 우리 신앙의 터전이자 기둥인 성경에 의해서 확증되는 것이었다. 2) 세례 때에 받은 진리의 교령을 견고히 붙잡고 있으면 성경의 의미를 왜곡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령"은 결코 성경과 구분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단지 성경 속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를 요약한 것이었다.

터툴리안: "전승"의 의미를 확대해서 교회 속에서 여러 새대동안 관습화된 것들을 포함시킴. 그러나 일차적인 의미에서 사도적, 복음적, 카톨릭적 전승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이렇게 이해된 전승은 결코 성경과 대비되지 않는다. 전승은 성경 속에 소중히 간직된 것이었다. 이는 사도들이 그들의 구전에 의한 가르침을 나중에 서신들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필히 참되고 성경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을 받은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터툴리안, 사도적 전승을 신약에 제한하지 않았다. 사도적 전승은 교회들이 공적으로 선포하는 가르침 속에서 여전히 발견된다. 은밀한 전승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도들이 계시를 전체로서 알고 있지 못했다거나 전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 생각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터툴리안: 신앙의 표준, 이레니우스: 진리의 교령, 같은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터툴리안: 신앙의 표준이 사도들을 통해 전해졌고 이 신앙의 표준은 어떤 사람의 기독인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신앙의 표준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주석의 길을 지시한다.

터툴리안: 성경은 모든 부분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에 전체로서 읽으면 뜻이 분명해 진다고 확신했다. 학자들은 터툴리안이 마치 기록되지 않은 전승을 성경보다 더 궁극적인 규범으로 삼았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이레니우스와 거의 동일했다. 오직 성경을 토대로 해서 이단들과 논쟁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확신했다. 이단들은 성경의 명백한 의미를 매우 노련하고 교묘하게 왜곡하기 때문에 그러한 논쟁 속에서 성경만을 토대로 삼아 결정적인 결론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터툴리안 전제: 하나님의 동일한 계시는 성경과 교회의 지속적인 공적 증언 속에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 교회들이 순수한 사도적 가르침을 전수함에 있어서 어떤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키프리안: 사도적 전승은 주의 전승의 뿌리이자 원천, 신적 전승의 샘이자 원천이다.

아타나시우스: 교회의 초석은 주께서 주셨고 사도들이 선포한 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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