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저자의 통일성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약2:11)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이슈가 본문의 발단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란 수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원리가 제시된다. 하나의 율법을 거역하든 율법 전체를 거역하든 동일한 범법의 무게를 가진다는 개념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 꺼낸 하나의 사례가 본문이다. 저자 의존적인 사색이다.

하나의 율법과 율법 전체의 동일시는 바로 명령자의 동일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간음하지 말라고 명하신 동일하신 하나님이 살인하지 말라고도 명하셨다. 하나님의 법에 있어서는 범법의 경중이 갯수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극히 사소한 하나의 법을 범한다 할지라도 그 범법은 법의 출처이신 하나님께 소급된다. 이상한 산법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는 하나님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고 능멸하는 범죄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었다. 피조물과 관계된 범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악과를 매개물로 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불법을 행한 것으로 여겨졌다. 본질상 모든 법이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에 대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와 행해야 할 도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존재성이 그런 태도와 도리의 핵심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하고 누구에게 대한 것이든지 다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고 결국 하나님 앞에서의 행위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는 부르심을 받았다. 만물의 창조자요 율법의 수여자요 구속의 저자는 동일한 분이어서 그렇다. 이 날이 더 중요하고 저 날이 더 중요하다 말하지를 못하고 이 율법이 더 중요하고 저 율법이 더 중요하다 말하지를 못한다. 그런 차별은 창조자와 입법자와 구속자가 한 분이라는 사실의 망각에서 빚어지는 오해이다.

약속과 성취라는 개념으로 신구약을 분할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시대별로 의미의 차별을 가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교회에서 신분의 등급을 매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교리에 마치 서열이 있는 것처럼 구분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성과 속, 은총과 자연 사이에 선명한 경계선을 그리는 얄팍한 구획화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혼동을 방조하는 것은 금물이다. 범신론과 다신론과 범재신론 등은 모두 마땅히 사려해야 할 구분선을 은밀히 삭제한 인간의 지적 고안물 혹은 종교적 대체물에 해당된다. 통합과 혼합은 구분해야 한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근원도 없으시고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표상되지 않기에 스스로 계신다고 말씀한다.

온 세상에서 단 한 지점도, 온 역사의 단 한 순간도 하나님과 결부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의식의 지평으로 삼아야 성경이 통합적인 안목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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