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4일 수요일

사랑의 방향성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의 방향이다. 방향의 올바른 설정이 전제되지 않은 모든 행위나 진로는 결국 '여기가 아닌가벼' 낭패감의 원흉으로 작용한다. 낭패와는 역방향을 질주하는 듯한 형통과 번영도 실상은 어쩌면 보다 심각한 낭패감을 초래하는 원흉의 괴수일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굶주린 사랑의 해우소 차원에서 무언가를 추구하게 된다. 탐닉하고 집착하고 파괴하는 본성의 기운이 무의식의 언저리로 파고든다. 당연히 그런 기운의 자취는 추적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다. 어떤 형태로든 곪아서 터져야 비로소 인식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무엇을 하든지 뭔가가 살아난다. 생각을 해도 생명의 기운이 작용하고 행동을 해도 거기에서 생기가 발산되고 말을 하더라도 음파의 향기가 진동한다. 사소한 것들도 고귀하게 변모하고 일상적인 것들도 특별의 수위로 상승한다. 신비롭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양한 결과가 뒤따른다. 그런데 밖에서는 그 인과의 뚜렷한 궤적이 관찰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는 안다. 내 삶의 모든 순간들에 행위의 모든 조각들과 생각의 모든 마디들이 어떻게 조성되고 상합하여 의미가 되고 가치가 되는지를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대체로 들키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의 끈적한 표정이 빚어지기 쉽고 이래도 그만이고 저래도 그만이란 무차별의 나른함에 빠지기 십상이다.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어진 삶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러나 세상을 통째로 속여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니까 그분의 존재가 부담이다. 존재를 지우려는 동기는 강력하고 방법은 간단하다. 무신론만 내뱉으면 존재의 삭제는 간단하게 종결된다. 요청된 분이기에 요청이 없으면 존재의 무게가 소멸되는 분이라는 이해도 유용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는 지워질 수 없으며 그분이 온 땅을 통치하고 계시기에 세상 전체를 속이거나 설득해도 종국적인 낭패감은 따놓은 당상이다. 반드시 좌초한다. 사람들을 다 속였다고 안심할 때 찾아오는 낭패의 근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존재가 무너진다.

사랑은 두 대상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속성이다. 택일해야 한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망각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덮고 기억하고 끌어안게 된다. 모든 계명의 종착지가 하나님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방향을 설정한다. 반나절이 걸려도 아깝지가 않다. 그릇된 방향이 모든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무로 만들기 때문이다. 방향이 우선이다. 설정되면 전력으로 질주하면 된다. 방향도 알고 선택할 수도 있는 은혜가 무한대로 제공되고 있어 만 입으로도 감사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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