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7일 토요일

행복에의 회복

히포의 주교에게 1) 하나님 추구와 2) 행복 추구와 3) 진리 추구는 동일하다.

귀하고도 부러웠다. 하나님 추구와 진리 추구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동일하다, 이런 생의 판단력과 체질을 가진다는 것은 놀라운 저력이다. 하나님과 진리와 행복의 동일시가 이론적인 지식으로 고수하는 사람들을 보았어도 그것이 전인격과 생을 관통하는 경우는 희귀한데 희포의 주교는 이런 점에서도 본받고 싶은 귀감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한다. 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가? 어거스틴 진단은 이렇다. 행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면 추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모든 인간이 아담의 죄와 부패에 참여한 것처럼 타락 이전의 아담이 누렸던 행복에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으로 행복에 참여하는 것인지, 실재로 참여하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우리는 아담이 잃어버린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고 살아가게 되어 있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었다. 참된 삶이란 진리를 갈구하는 삶이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행복한 삶이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말씀이니 결국 진리를 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삶이고 행복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 것은 진리와 하나님과 행복과 진정한 삶을 동시에 등돌린 격이었다. 모든 것이 절망으로 돌변했다.

유일한 회복은 말씀으로 돌이키는 것인데 그 말씀이 우리에게 오셨다. 회복의 성취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의 몫이었다. 하나님을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진정한 블레싱의 삶이 오직 그분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다. 다른 행복론은 불행론의 다른 이름이다. 행복의 개념적 도전은 이제 종결이다. 그러나 행복의 체질전환 문제는 별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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