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본질에 내린 뿌리

작금의 상황 속에서는 그렇게도 중요하고 긴급하게 보이던 것도 조금 시간이 지나보면 유행성 선동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유행의 장단에 우리의 신학적 보폭을 맞추지 않아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하면 복장교체 문제로 분주하고 관심사도 소진하여 본질에 대한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관능적인 이슈들이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를 잠식하기 위해 기회만 닿으면 요염한 포즈를 잡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한 우리의 일상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할당할 관심의 분량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해 보입니다. 관심의 안배가 적절하기 위해서는 본질과 유행을 식별하는 안목과 유행에 뒤쳐져도 도태되는 게 아니라는 배포가 있어야 할 듯합니다.

그런 안목과 배포를 기르는 유력한 방편으로 저는 고전을 권하고 싶습니다. 교부들의 글을 숙독하고 종교개혁 주역들의 옥필들을 꼼꼼하게 읽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유행성 신변잡기 대우를 받았으나 오랜 옥석검증 기간을 거쳐 본질적인 것이라고 확인된 문헌들 말입니다. 

본질에 견고한 터를 닦은 이후에 유행에 대응해도 늦지 않습니다. 본질에 터를 닦는 것 자체가 이미 최선의 대응인 것 같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절기별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의 세기가 더할수록 깊은 뿌리의 향기만 짙어질 뿐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체질의 가변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하루 우리는 무지불식 중에 어떤 체질을 향해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신앙도 학문성도 어법도 태도도 사고도 일상도 하루하루 굳기가 더해져서 그 자체가 응축된 의미와 가치와 메시지로 빚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대기를 다 파악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려주신 인생 설계도를 따라 하루하루 걸음을 옮기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우리의 걸음은 본질이란 디딤돌을 골라서 내딛는 게 최상인데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 장거리 경주의 중심을 쉬 잃습니다. 

말씀의 본질은 너무도 깊어서 한번 들어가면 사실 유행에 반응할 관심의 여분이 잘 마련되지 않습니다. 시간의 표피를 뚫고 들어가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와 마주치게 되고 결국 시간의 유행성에 매이지 않는 본질을 자기의 시대에 유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의 문제를 커버하지 못하는 삐딱한 본질에의 집착에 면죄부를 발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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