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9일 일요일

기도란 무엇인가? 2

기도에 대한 두번째 경계로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이방인이 드리는 중언부언 기도는 피하라고 말합니다. 중언부언 기도는 의미도 없는 음향을 반복해서 말하거나 무의미한 혹은 일관되지 않은 말을 끊임없이 내뱉는 기도를 뜻합니다. 이방인의 중언부언 기도는 신에게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거라는 그들의 그릇된 신지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파장으로 하나님의 고막을 두드려야 비로소 알고 반응하실 것이라는 오해 말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묵상도 다 아시고 생각이란 내면의 언어로 옷입기 이전의 소원까지 다 들으시고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가 기도의 왜곡을 낳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제대로 알고 그 지식에서 자라갈 것을 권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영혼의 일반을 지으셔서 모든 정신적 활동 일체를 어떠한 중개물도 없이 직관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앞서 아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법을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외식하는 자나 이방인의 무슨 '주문'이나 '주술'을 기도로 간주하고 치성을 올리는 기도문화 양산의 주범이나 옹호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전지하고 전능하고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그런 분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에 기초한 전도자의 권고를 경청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에 방대한 언어를 쏟아내고 오랜 시간동안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 경건이나 영성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열성적인 기도생활 속에 스스로도 속는 경건의 막대한 거품이 있다는 것을 경험자는 알 것입니다.

그렇다고 미지근한 기도나 건성적인 기도나 형식적인 모양 갖추기식 기도를 권하거나 옹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드리는 하나님 사랑의 일환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와 같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 뜨겁고 깊고 절박하고 집중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물리적인 요소들 때문에 경건한 기도자의 최면에 스스로 빠지지는 말라는 차원에서 예수님의 경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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