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2일 월요일

진리의 출처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신학의 원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이고 하나님의 영광은 신학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라틴어로 a duo principia ad unum terminum이다 (교회사 속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된 적은 없지만). 성경의 이중적 원리는 성경이 스스로 진리임을 드러내기 때문이고, 성경을 읽고 진리를 깨닫는 것도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독자의 어두운 영혼을 밝혀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진리의 고백과 보존과 전달은 외관상 인간을 통하지만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진리를 고백하면 그것의 소유자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의 소유자가 타락하면 진리도 덩달아 진리가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진리의 존립을 인간이 임의로 좌우할 수 있다는 발칙한 전제에서 비롯된 고의적 착시이다. 바른 진리를 전달자의 인간적인 취약성을 근거로 거절할 때 늘 동원되는 것이거든.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진리를 고백했다. 자기애(amor sui)에 광적인 순발력을 무시로 발휘하는 인간이 진리의 출처를 인간에게 돌리지 못하도록, 진리의 샘은 하나님 자신이고 진리의 깨달음도 하늘에서 온 것임을 예수님은 곧장 알리셨다. 즉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진리의 출처요 시혜자란 사실 말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반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운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연히 그 반석은 곧장 '사단아 물러가라' 멘트가 가해진 변덕의 주인공 베드로가 아니다.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는 반석은 베드로가 고백한 기름 부음을 받으신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 예수시다.

그러나 언급된 교회와 반석 이야기는 교회가 집단으로 넘어진 걸림돌이 되었던 대목이다. 지금도 넘어진 그 지점에서 일어서지 않고 있는 무리들이 많다.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고 인간의 운명을 매고 푸는 하늘의 열쇠를 부여받은 자이고 그를 계승한 자가 동일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오류가 교회의 진리를 걷어차고 득세한 역사가 지금도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지금도 진리가 인간에게 의탁되지 않았고 인간이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나 지독하게 거절하고 있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유대인의 유익은 그들이 말씀을 맡았다는 것에 있다는 바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 말씀에 정통한 서기관과 바리새인 및 율법학자 무리들의 행실을 보신 예수님은 '무엇이든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하셨다. 맡겨진 말씀의 궁극적인 출처는 하늘이기 때문에 받되 전달자의 부정한 행실은 거절해야 한다는 분별력을 요구하신 말씀이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 비록 은혜이긴 하나 어떤 독점권 혹은 특권이 그것에 결부된 것은 아님을 명시하신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다.

역사 속에는 엄밀한 진리를 고백하긴 했으나 그들의 행실은 경계해야 하는 사례들로 충만하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의 괴리가 얼마든지 성도의 삶과 교회의 현실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 사회적 문화적 문맥에서 용인될 수 없는 행악의 주동자를 통해 진리가 고백되는 경우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마땅한가? 그들의 고백은 받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야 하겠다. 인간이 밉고 괘씸해서 그의 고백조차 폐기하는 것은 감정에 충실한 판단일 뿐이다. 이는 진리의 전수와 전달과는 무관한 태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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