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8일 목요일

거짓의 원흉과 극복

그가 너를 책망하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너는 이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

짐승은 태어나서 시간이 흘러도 본능과 거리를 만드는 이성적 활동이 없다. 대신 직관이 강하다. 이런 이유로 자연적 재앙의 직관적인 감지는 대체로 짐승들의 몫이다. 이와는 달리 인간은 나이가 들고 키가 자라면서 외부의 대상이나 자신의 본능에 대해 거리를 만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내감할 수 있는 능력은 짐승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짐승은 '나는 누구일까?' 이런 고민 안한다. 생존의 필요가 곧장 욕구이고 행동이다.

문제는 본성과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면 둘수록 그 실체를 지각하는 정확도도 떨어지고 직관의 현저한 희생도 따른다는 점이다. 당연히 직관적인 인식의 촉수도 둔감해져 변화에 민첩하지 못하고 때때로 오식과 악수에 시달린다. 잘못된 인식에 따른 어리석은 처방과 처신으로 만들어진 불행의 역사는 이미 산더미를 이루었다. 이를 성숙의 댓가로 보기도 하지만, 어쩌면 대상과 본성에서 멀어지는 것 자체가 성숙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도 가능한 부분이다.

난 이런 의심에 근거하여 거짓의 본질이 우리의 본성을 포함한 모든 대상들과 거리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거리 만들기의 대표적인 수단은 언어다. 언어와 생각의 우선순위 문제는 명쾌한 판별이 어렵지만 서로 분리되기 어렵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물과 사태를 언어나 생각으로 번역하는 순간 우리는 그 실체에서 멀어진다. 대상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만큼, 그 대상의 실체에서 멀어지는 건 당연하다. 생각과 언어가 대체물인 경우도 그러하다.

언어의 귀재 바트겐슈타인이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가 대체로 언어의 오해와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하고, 일상언어 사용의 중요성과 분석에 투신한 것은 괴짜의 엉뚱한 발상이 아니었다. 천재의 직관이 발휘된 판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거짓의 출처를 언어사용 유무 이전으로 소급한다. 즉 하나님과 거리를 만드는 것이 거짓의 본질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상대적인 거짓이며 파생적인 오류일 뿐이다. '거짓'의 탁월한 전공자는 히포의 주교다. 두 권의 단행본을 생산한 인물이다: [거짓에 관하여(De mendacio)]와 [거짓을 반박하며(Contra mendacio)]

어거스틴은 거짓을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박힌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거짓은 실체에서 멀어진 거리이고, 최고의 진리시며 진리의 본체시며 진리의 근원이신 그 하나님을 떠나 거리를 만드는 게 거짓의 본질적인 출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체시며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어떠한 차이나 분리나 거리도 없으시기 때문에 진리시며 거짓이 전혀 없으신 유일한 분이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일성 밖으로 발가락 하나만 삐져 나와도 거짓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거짓 문제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당연히 거짓의 극복은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이 책망의 이유이고 거짓의 핵심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히포의 주교는 실천적인 면에서 유용한 거짓의 8가지 분류법을 제공한다. 1) 종교적 가르침 속에서의 거짓, 2)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도움도 안되는 거짓, 3)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만 어떤 이에게는 도움을 주는 거짓, 4) 거짓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구사되는 거짓, 5) 감미로운 대화 속에서 타인을 즐겁게 할 목적으로 언급되는 거짓, 6)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어떤 이에게는 일반적인 도움을 주는 거짓, 7)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어떤 이에게는 영적인 도움을 주는 거짓, 8)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어떤 사람을 육신적인 불결함에 빠지지 않게 하는 거짓 등이다. 환원주의 날이 훨씬 예리해진 오늘날은 더 다양한 종류의 거짓을 열거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행위와 거짓과 성숙은 경계선이 대단히 애매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게 거짓의 원흉이란 사실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파생적인 것이고 개념의 옷을 입혔을 뿐이다. 그런데 파생적인 것도 중요하다. 그래도 이해의 질서는 필요하다. 이에 따라서, 거짓의 극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는 것이고 의식의 영역에 있는 모든 것들에 있어서는 고의적인 거짓과 오류를 가능한 한 피하는 순차적인 처방이 필요한 거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기 위해, 주의 말씀을 즐거워 하여 주야로 읽고 묵상하는 것은 상식이요 필수다. 성경의 물리적인 텍스트 가감, 해석학적 가감, 실천적인 가감을 경계하며 그러해야 하겠지만...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