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내가 아노라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겔11:5)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실의 유무와 진위가 보증하는 진실 이상의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 진실의 극대점에 기독교의 경건이 있습니다. 연습으로 도달하고 머물 수 있는 지점이 아닌데도 그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명하신 것은 그런 경건을 산출할 생산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말하고자 함이 아닌 듯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은혜의 깊은 인식으로 들어가는 최선의 길이어서 이정표로 주신 명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면, 현실의 유익에 아첨하는 것과 진리에서 이탈하는 경계선이 아주 애매한 채로 현실에 안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목회자의 길, 자신의 일대기를 건 결정과 그에 따르는 자존심 때문에 진리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굉장한 희생을 결심한 이후에도 큰 후회가 때때로 경건의 목덜미를 잡습니다. 우리에게 간혹 발견되는 진실, 정직한 양심으로 조성된 진정성이 있더라도 그것은 지속적인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잠시 맡겨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타인보다 조금 진실한 것 가지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감사할 일인 것이지요.

주님은 마음을 지으신 분으로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신다고 말합니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줄을 붙들었던 이방인 칼에 대한 두려움을 지적하는 문맥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찾으시는 진실의 실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실을 찾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추구하고 반응해야 할 진실의 실체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저는 '경건의 연습'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물론 경건의 연습이 예배, 헌금, 기도, 교제, 전도 등의 행위가 수반되는 가시적 훈련과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구조적인 틀이 제공하는 유익을 폄하하고 남들이 확인할 길이 없는 내면의 고고한 경지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오만한 선민의식 및 은밀한 나태는 자신도 속고 타인도 속이는 아주 야비한 짓입니다.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하는 '양다리 걸치기' 혹은 '절충주의' 공법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판단의 필수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아신다는 사실이 저로 하여금 전혀 다른 차원의 가치를 추구하게 만들고 인생 전반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항로를 보여주는 등대와 같아서 참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이 말씀의 빛으로 졸음에서 깨어난 눈을 밝힙니다. 주께서 나로 추구하기 원하시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요...^^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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