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8일 목요일

순종의 길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는 나를 높이사 (삼상15:30)

이는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려서 버림을 받아 왕이 되지 못한다는 사무엘의 선언 이후의 일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을 어길 때에도 사울의 변명은 궁색했다. 백성이 두려워서 그랬단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사울은 어긴 이후에도 하나님이 누구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고 적어도 장로들과 백성 앞에서는 높임을 받게 해 달라고만 매달렸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울의 꿋꿋한 '일관성'이 돋보인다. 이는 사울의 정신세계 전체가 고스란히 노출된 사건이라 생각된다. 사실 사울의 궁상맞은 애걸에 사무엘은 호응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비록 사울이 백성들의 면전에선 높임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미 왕이 아니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진술처럼, 하나님을 버림은 인간의 가장 어리석은 행위이고 가장 치명적인 범죄이고 가장 쓰라린 고통이다. 이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버리심은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진노이며 형벌이다. 이것보다 더 두렵고 떨리는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 이외에 다른 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자의 종말은 이처럼 비참하다.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 하라'고 당부하신 바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섬기는 자가 일평생 붙들어야 할 말씀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두려워서 그들에게 높임을 받으려는 마음이 우리로 사울의 전철을 밟게 한다.

나는 사울이 버림을 받기 이전에 불순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방식이 다른 무엇보다 섬뜩하다. 그는 사무엘의 호통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으로 제사할 수 있도록 흠없는 양을 진멸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백성을 이롭게 하자는 너무나도 합당한 명분으로 그랬다는 말이겠다. 이와 유사한 버전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사울의 모습은 마태복음 7장에서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냐"며 항변하는 많은 분들에게 고스란히 투사된다. 다 주님의 나라 위하자고 그랬는데 예상밖의 문전박대 판결에 분통이 터진다는 얘기겠다.

만약 예수님과 항변자들, 그리고 사무엘과 사울이 지금의 교회에서 끝장토론 벌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수님과 사무엘의 패소 가능성이 농후하다. 배심원의 마음은 항변자와 사울에게 기울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뜩하다. 우리들의 눈에 사울의 행실은 왕직에서 물러나고 하나님께 버림까지 받을 정도로 불법적인 것이 아닌 듯해서다. 오히려 하나님과 백성을 그렇게도 위하는 보기드문 훌륭한 지도자로 보인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 항변하는 이들의 행실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판결보다 '하나님 우편 일급 우등석에 앉으라'는 환대가 합당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도덕과 윤리가 미숙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성경에서 너무도 멀어져 있어서 그런걸까.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에 비해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다.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나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죄의 기운으로 밝아진 우리의 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의 뜻 준행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사실을 견고히 붙드는 것이 성도의 상책이다. 다 이해될리 없겠지만 그냥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길이 순종의 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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