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3일 화요일

긍휼히 여기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5:7)

지혜자는 우리에게 원수라 할지라도 절망하고 자빠졌을 때에 고소해 하거나 통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유는 하나님이 그런 처신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나아가 성경은 원수들의 흥망성쇠 따위에 준동하는 것 자체를 금하신다. 그들이 망하면 즐겁고 그들이 흥하면 부러움에 빠지거나 배알이 꼬이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다. 그리고 시간의 한 시점에서 비록 일시적 원수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돌이킬 하나님의 잠재적 백성인 줄은 우리가 알지 못해서다.

상대방의 상태나 조건을 떠나서 우리가 모든 인간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는 긍휼이다. 긍휼이란 은혜롭고 자비로운 사랑과 용서와 공감의 태도를 일컫는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다. 참으로 불쌍하다. 불쌍함은 인간의 실존이다. 아무리 잘나가고 근사하고 멋있어도 죽음의 사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시야가 좁아서 사람의 종말이 아득한 미래처럼 잘 감지되지 않아 우리는 어떠한 인간이든 필히 맞이하게 될 종말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방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분노와 즐거움과 흥분과 부러움이 늘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시야의 단편성 혹은 편협성 때문에 촉발된다. 이는 하나님이 배제된 반응이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갈등은 끝난 듯하여도 곧장 흔적조차 사라지는 '칼로 물배기'와 같아서 일평생 지속된다. 부모와 자녀와의 신경전은 살얼음판 상태의 긴장이 단 하루의 휴전도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주와 직원 사이에도, 지도자와 백성 사이에도, 교수와 학생 사이에도,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도 저마다 속 터지는 사연들로 휴전선을 방불하는 반목과 대립의 차가운 기운이 쉬 제거되지 않는다. 누구나 경험하고 공감하는 인간사의 현실이 그러하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아서 빚어지는 현실이다. 언젠가는 죽음이 갈라놓을 관계이다. 있을 때 최대한의 긍휼로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관계의 끈이 튼실하고 만족의 배가 두툼하고 회복의 때가 이르러야 비로소 발동되는 안도의 하품이나 기지개가 아니다. 동정의 몽롱한 느낌도 아니다.

긍휼의 달인이신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셨나? 예수님께 이 땅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죽음으로 한발짝씩 다가가는 가시밭 길이었다. 그런 주님께서 자신의 속성이 어떠함을 설명하고 제자들로 그런 속성에 참여할 것을 기대하며 그러한 신적인 성품에의 참여가 그들에게 최고의 복이라는 확신 속에서 교훈하신 말씀이 바로 팔복이다. 당연히 긍휼도 다른 복들처럼 죽음으로 한발짝씩 접근하는 행보이고 동시에 우리에겐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으로 다가가는 순례이며 땅에서는 주어지지 않는 천상적인 지복의 엄습을 촉구하는 삶의 자세이다.

긍휼은 결코 기독인의 종교적 장신구가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각자의 인격과 행실로 진동해야 할 향기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에게 손해와 억울함을 유발하는 원수들에 대해서도 결코 내동댕이 쳐서는 안되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이다. 그의 마음을 품는 게 다른 어떠한 희생보다 중하기에 긍휼을 접어서는 아니된다. 긍휼은 결코 타인의 악행이나 오류나 교만의 옳음을 승인하는 것도 아니고 사태와 상황과 상대의 강함에 비굴한 고개를 숙이는 나약함도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승리의 깃발이다.

긍휼은 땅에서의 변동되는 모든 것을 잃더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로운 내음에 온 인격과 생이 휩싸여서 원수들도 그것에 취하게 만들고 그들의 뽀족한 창을 꺾고 살벌한 검을 녹이며 난폭한 전운의 불씨마저 꺼뜨리는 강력이다. 긍휼은 기독인의 가슴에서 한번도 그 박동을 멈추지 말아야 할 주님의 심장이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인간의 실존에 기반한 긍휼, 그런 인간을 향해 긍휼의 길을 목숨까지 희생하며 완주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첨경인 긍휼은 우리에게 취하라고 주님께서 건내시는 복이다. 그 복은 주변에 산적해 있다.

관심의 손만 뻗으면 취할 수 있도록 가장 가까운 배우자를 비롯하여 부모님과 자녀들과 친구들과 이웃들과 원수들에 이르도록 긍휼의 복으로 충만하다. 타인을 긍휼히 여김으로 주님의 향기가 발산될 빼곡한 계기들이 가까운 일상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사실 긍휼은 꼭지가 틀어진 관계성 속에서 각별한 위력을 발휘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긍휼의 출처가 지금도 우리로 진멸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무궁한 긍휼임을 확인한다. 상대방의 존재를 제거하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진멸되지 않고 있다는 현재 진행형 팩트를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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