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1일 일요일

바르트 수업 후기...

핀스트라 교수님의 바르트 수업이 엊그제 종강했다. 바르트를 읽고 수업에 참여하며 느낀 소감을 돌아가며 나누었다. 나는 두 가지를 언급했다.

1. 바르트가 처하였던 역사적 문맥과 신학적 정황을 존중하며 바르트를 읽어야 한다. 자연신학, 주관주의 신학, 계몽주의 사상, 역사적 상대주의, 2차대전 이후의 문명사적 혼돈이 혼탁하게 버무려진 복합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바르트가 자기 시대의 숙제를 푸는 열쇠를 마련하는 신학적 작업의 본의를 놓치거나 왜곡하기 쉬워서다.

2. 바르트는 교부들과 중세 학자들과 종교개혁 인물들과 종교개혁 이후의 정통주의 인물들의 문헌들을 독파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되 문자 그대로의 복사판 되풀이가 아니라 주로 자신의 고유한 신학적 견해를 관철하고 투사하는 방식으로 읽었다. 전통에 대한 바르트의 이러한 독법은 '신(neo)'이라는 수식어로 그의 신학적 노선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청강하는 주제에 수업에서 거둔 지적 수확을 보란듯이 거창하게 열거할 수 없어서 두 가지만 말하였고 그것도 첫 문장만 언급할 수밖에 없었으나 출고되지 않은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목젖까지 차올라 있었었다.

3. 바르트의 교부, 중세, 종교개혁, 정통주의 문헌들에 대한 독서의 방대함이 놀라웠다. 특별히 개혁주의 신학의 출처에 해당되는 문헌들을 바르트 이상으로 독파한 분들이 한국이든 외국이든 희귀하기 때문에 바르트 신학의 문제점이 심각하다 할지라도 거기에 무딘 비판의 날을 세우기가 심히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다. 물론 아무리 대가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후대의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최소한 선이해와 후평가의 기초적인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 바르트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특별히 성경론, 삼위일체, 예정론에 있어서 그가 처하였던 시대적 환경과의 신학적 상호작용 속에서 역사성의 창살에 갇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수업 중에 제기한 바 있으나 핀스트라 교수님은 그 시대가 부여한 과제에 바르트가 충실했던 것으로 보아도 좋겠다는 견해를 밝히셨다. 이에 나는 나를 둘러싼 시대적 환경에의 충실이 개별 신학자의 신학이 맴도는 돌쩌귀가 되어서는 안되며 성경의 중심적인 진리라는 토대를 떠나지 않아야 한다는 유순한 반론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반박은 신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각 시대의 탁월한 인물들은 다 자기에게 부과된 시대의 숙제를 풀고자 성실하게 임했던 분들이며 그들에 의해서 신학적 전통이 건강하게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하시었다. 나는 재반론에 돌입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렇게 반응하고 싶었다. 신학자의 과제는 자기가 사는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며 문명과 문화가 변한 미래의 상황에도 여전히 교훈 제공자의 책임이 어깨에 지워져 있기에 자기 시대의 물음에 반응하는 식으로만 신학을 추구하면 영원하고 불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견고히 붙들고 후대에 전수해야 할 말씀 맡은 자들의 도리는 져버리게 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말이다. 내 가족, 내 공동체, 내 민족, 내 국가, 내 시대라는 나 중심적인 신학의 범주를 임의로 설정하는 것은 시대에의 지나친 적응에 어쩌면 유일한 견제의 고삐마저 제거하는 셈이 될 지도 모르겠다. 모든 시대의 문제를 푸는 해법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자기가 처한 시대의 문제도 풀어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물론 자기 시대에 촉발된 문제가 보편적 해답 마련의 계기가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5. 바르트는 신학적 호불호를 떠나서 대가임에 분명하다. 바르트의 책은 한번 거머쥐면 독자가 관심의 채널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중독성이 발동한다. 그가 그리는 거대한 그림의 웅장한 체계에 갇히거나 흡수되어 헤어나올 수가 없어진다. 나는 신학적인 면에서 그의 성경론과 삼위일체 및 예정론 때문에 바르트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종교개혁 인물들과 정통주의 인물들의 문헌들을 수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일례로 그의 바젤대학 선배 교수였던 폴라누스 독법에 있어서도 나와 바르트는 해석학적 평행선을 그린다. 물론 각자의 입장을 따라 취하고 버리는 절충적인 태도는 유사하나 그런 태도로 취한 내용과 자기화 방식에 있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6. 핀스트라 교수님께 감사를 드린다. 때때로 바르트의 문맥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고 내린 비판적 견론을 수정하는 일들이 많았다. 전통에서 벗어나고 개혁주의 진영의 눈에 거슬리는 표현 속에서도 바르트가 본래 의도하려 했던 의미를 집요하게 찾으려는 선이해 중심적인 교수님의 태도는 나의 경박한 비판 일변도의 자세에 때때로 재동을 걸었다. 상대방을 먼저 진실하게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본의를 파악한 이후에 자신의 신학적 기호로 보다 객관적인 평가에 들어가는 태도가 한 학기내내 나를 교훈했다. 핀스트라 교수님도 사실 삼위일체, 기독론, 성경론, 예정론에 있어서 바르트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여기신다.

7. 학점(credit)으로 수강하는 학생들의 성실한 발제와 문제제기 및 토론으로 건진 유익과 교훈도 지대했다. 역시 좋은 수업은 참석자 모두가 협렵하여 이루는 선이었다. 논문작성/디펜스 준비에 쫓겼지만 이런 수업을 제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후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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