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0일 수요일

우연성 문제: 어거스틴 및 칼빈

바실은 운명이나 우연이란 말이 이교도적 용어이며 그것이 풍기는 기운에 경건한 사람들이 취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모든 진정한 번영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고 재난과 역경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한다면, 인간사에 운명이나 우연이란 말은 발붙일 곳이 없다는 말이겠다. 어거스틴 역시 인상적인 고백을 남겼다.

"나는 아카데미 학파에 대한 논박에서 이따금씩 운명이란 말 언급한 것을 나 스스로 유감으로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그 말로써 어떤 여신이나 그 용어에 투영되는 다른 것을 가리키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선한 일이든 악한 일으든 외부적인 사건에 있어서의 우연적인 결과를 지칭하려 한 것 뿐이었다. 운명(fortuna)이란 말에서 우연히(forte), 아마(forsan), 혹시(forsitan), 어쩌면(fortasse), 뜻밖의(fortuito) 같은 말들이 나왔는데 이러한 것들은 조금도 거리낌 없이 상요할 수 있는 말들이며 모두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관계된 것임에 분명하다. 이에 대하여 나는 침묵하지 않고 흔히 운명이라 부르는 것이 은밀한 질서로 말미암아 조정되는 것이며 우연한 사건이란 우리가 그 원인과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실로 그렇게 말하기는 하였어도 나는 이런 식으로 운명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을 후회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주 나쁜 습관에 젖어 있어서 당연히 '이것은 하나님이 뜻하신 것이다'고 할 것을 '이것은 운명의 뜻이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히포의 주교는 만일 무엇이든 운명에 맡겨 버린다면 세계는 목적이 없이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늘상 주장했다. 하나님의 명령 없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발칙한 광기라고 이해했다.

칼빈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아둔한 마음은 하나님의 높은 섭리까지 이르기에 너무도 낮은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끌어올릴 구별이 필요하다. 나는 만물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확실한 분배에 따라 장하여 졌으나 그것들이 우리에겐 우연적인 것이라고 구별을 지으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운명이 세계와 인류를 지배하며 만물을 멋대로 상하로 굴러가게 한다는 그런 생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당연히 기독인의 가슴 속에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의 질서와 이유와 목적과 필연성은 대부분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감추어져 있고 인간의 생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하나님의 의지로 발생하는 것인데도 운명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의 성질에 따라 생각되든 우리의 인식이나 판단에 따라 평가되든, 그것들이 겉으로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Calvin, Institutio 1559, I.xv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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