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내가 응하리라

그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하리라 (호2:21-22)

역사를 푸는 다층적인 인과가 가장 뚜렷하게 증거된 구절이다. 인간의 삶이 음식의 풍부나 빈곤에 있다면 그 바탕은 땅의 문제이고 한발짝 소급되면 하늘의 문제이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근원적인 역사의 주관자로 계시다는 얘기겠다. 성경에는 양식의 문맥에서 역사를 푸는 경우도 있고 땅의 척박과 비옥으로 풀기도 하며 하늘의 현상들이 역사의 광음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다. 성경은 어떠한 차원의 인과도 소홀히 다루지를 않는다. 배우고 따라야 할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그 모든 인과들이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에 충실한 방편들로 동원되고 있다는 인과의 전체적인 그림도 간과하지 말아야 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근원을 하나님 밖에서 찾는다. 물질적 생산력에 근원을 둔 유물론과 땅의 질서에 근원을 둔 자연주의 및 하늘의 변화에 근원을 둔 점성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들 그럴듯한 일리와 유력한 근거를 가졌지만 진정한 근원에 이르지 못했다는 면에서 헛다리를 짚었다고 하겠다. 하나님의 응답이 다양한 인과의 사슬로 이루어져 있으나 결국 '내가 응한다'는 선언이 핵심 포인트다. 신명기가 율법의 위반과 준수를 기준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기술하고 역대기가 역사를 움직이는 원인으로 사람의 행실을 지목하며 가깝게는 므낫세의 악행이, 멀게는 여로보암 범죄를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으로 언급한다.

물론 호세아도 이런 율법과 인간 문맥에서 벌어지는 인과들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깊은 근원으로 소급하여 인과의 끝자락을 진단하는 노골적인 '근원으로 돌아가는(ad fontes)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소종하다. 북왕국 사상 최고의 번영기를 구가하던 호세아 시대가 보인 극도의 종교적 타락과 영적인 빈곤은 '이 나라가 하나님을 떠나 크게 행음'한 것으로 묘사되고 아담이 그 주범으로 지목된다. 결국 아담을 시초로 하여 온 인류를 관통하는 죄문제가 역사 전체를 푸는 열쇠라는 얘기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인류의 궁극적인 흥망을 좌우하는 마지막 인자는 아니라는 사실이 호세아의 묘미이며 핵심 메시지다.

죄의 끔찍한 본색을 암시하는 성경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광야와 아골 골짜기다. 낮에는 죽음의 열기가 위협하고 밤에는 살인적인 냉기가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는 광야에는 생존을 가능하게 할 어떠한 조건도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고 아골 골짜기는 사망의 악취와 흉물스런 뼉다귀가 나뒹구는 공간이다. 죄의 삯이 가장 선명하게 목격되는 현장이라 하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서 비로소 비옥한 포도원을 베푸시며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겠단다. 죽음이 사망에 삼키운 바 되는 구체적인 성격이 이보다도 더 짙게 묘사될 수 없도록 논지가 명쾌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끌려 다니시는 수동적인 통치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신다. 이 구절은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완전한 자유를 강조하고 그런 주님만이 모든 역사의 궁극적인 근원으로 계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역사의 운명이 죄에 맡겨지지 않아 행복하고 감사하다. 주님의 무궁한 긍휼과 자비가 인류의 진멸을 방지하는 유일한 열쇠여서 더욱 그러하다. 어떤 순간에도 망각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이 온 역사에 응하시는 분이라는 점이다. 이는 너무나 마땅한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의 방석에 주저앉지 않아도 될 마지막 소망의 근거겠다.

호세아는 이런 하나님을 인륜지 대사로도 입증하고 선포하는 선지자의 길을 걸어간 인물이다. 예수님의 동명이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호세아의 기록이 유난히 향기로운 주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