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1일 일요일

낙원과 무덤에 계신 예수님

라면향기 그윽한 평화로운 밥상에 갑자기 신학적 의문들이 쏟아졌다. 첫째와 둘째와 셋째가 번갈아 손까지 들어가며 때를 기다린듯 발포한다.

첫째: 아빠, 교부들이 틀렸어요. 

아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아빠의 전공분야 딴지거는 게냐?

첫째: 성경에는 예수님이 강도에게 오늘 낙원에 함께 있겠다고 했는데, 사도신경 보면 지옥에 가셨다고 하잖아요. 사도신경 만드신 분들, 잘못된 거 아니에요?

아빠: 아하하하...그 문제 때문에 교부들을 건드린 거냐? 아들아,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가 필요한 거란다. 교부들이 토대를 닦은 교리이지. 그래서 사도신경 이해할 때에도 교부들이 가진 삼위일체 개념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너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단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 즉 성자이신 동시에 완전한 사람도 되신단다. 신성을 따라서는 그 강도가 죽으면 그 당일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두번째 위격이신 성자와 낙원에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이고, 인성을 따라서는 부활하기 전까지 지옥에 계셨다고 이해해야 하는거지. 사실 성경 안에서도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의 지옥가신 이야기를 했단다. 

첫째: 어떻게 그래요? 예수님이 둘로 나눠지신 거에요? 아니라면, 성경에도 모순이 있다는 거잖아요!

아빠: 예수님이 둘로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성경의 모순도 아니란다. 교부들을 비롯해 중세와 종교개혁 시대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lius/aliud, totus/totum과 같은 구분들을 만들어 활용했다. alius와 totus는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고 aliud와 totum은 본성 즉 신성이나 인성을 가리키는 언어이지. 그러니까 Totus Christus는 모든 곳에 계시지만, Totum Christi는 모든 곳에 계시지 않는단다. 지옥에 가셨다는 말과 낙원에 계시다는 말이 모순처럼 들리지만, human nature 즉 totum을 따라서는 지옥에 계셨으나 성자로서 totus를 따라서는 모든 곳에 계시니까 낙원에 계셨다는 말이 맞지. 그러니 성경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사도들 사이에 견해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란다. 

둘째: 아빠, 하나님이 모든 곳에 계시다고 하셨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계시지 않잖아요. 계셨으면 믿었을 건데...

셋째: 아빠 아빠, 하나님이 모든 곳에 계시다면 '라면' 속에도 계시나요? 

아빠, 첫째, 둘째: 푸하하하~~~~ 크흐흐흐....

아빠: 아그들아, 오늘 밥상이 너무 무거운걸....^^ 둘째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믿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란다. 계셔도 믿지 않는 게 가능하지. 그리고 딸아, 사도행전 보면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곳에 거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 나온단다. 이는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것에도 하나님은 제한되지 않는다는 뜻이지. 시간과 공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거란다. 하나님이 모든 곳에 계시다는 말을 나무 젓가락 라면 계란과 같은 물리적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우리의 인간적인 생각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란다. 하나님은 영이시지. 하늘과 땅에 가득하신 분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 갇히시지 않으시는 분이니까 참으로 신비롭게 모든 곳에 거하시는 분이란다. 사람의 이해대로 하나님이 모든 물리적인 공간에 계시다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마치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인 것처럼 거룩하게 여기고 숭배하는 경우가 세상에는 많이 있단다. 그걸 Pantheism이라고 그래. Pan 모든 것을, theism 신으로 믿는다는 의미다. 잘못되고 안타까운 일이지...사랑하는 딸, 라면 먹어도 하나님 먹는 거 아니니까 맛있게 먹어~~~~ 하하하.

내일 부활절이 되면 어떤 질문들이 쏟아질지 생각하니 움찔하다. 이거 미리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방만한 마음 가졌다간, 가장의 역할도 충실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하는 점심이다. 그러나 뒷뜰을 덮은 수북한 햇살의 화려한 발광 덕분인지 밥상토론 분위기는 험하지도 어둡지도 아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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