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일 일요일

멀러의 도르트 신조 이해

멀러 교수님이 쓴 도르트 신조에 대한 짧은 기고문을 정리한다. 도르트 신조는 유럽 전역의 개혁주의 진영에서 총대들이 파견되어 개혁주의 교리의 왜곡된 부분을 반듯하게 펴려는 범국가적 시도의 산물이다. 이 총회를 촉발시킨 주범은 레이든 대학의 유니우스 후임자인 Jacob Arminius다. 그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면, 1) 은혜는 저항될 수 있다, 2) 인간은 구원받은 이후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무효하게 될 정도로 그 은혜를 저항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선택은 미래의 믿음에 대한 예지에 기초한다, 4) 벨직 고백서와 하이델 교리문답 일부는 수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Arminius가 죽은 이후에 그를 추종하는 46명의 무리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항론서(1610)'를 제출했다. 이에 네델란드 국회의 이름으로 총회가 소집되고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9일까지 진행된다.

멀러는 '칼빈주의 5대교리' 혹은 '튤립(TULIP)'이란 관점으로 도르트 신조를 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신조가 5가지 교리적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는 칼빈주의 사상을 5가지 교리로 압축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항론파가 제출한 항론서가 5가지 항목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개혁주의 교회의 보다 광범위한 가르침은 벨직 고백서와 하이델 교리문답 안에 담겼으며 도르트 신조는 왜곡된 교리수정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멀러는 꼬집는다. 그는 도르트의 다섯가지 헤드라인 주제들을 4가지로 분류한다: 1) 신적인 선택과 유기, 2) 그리스도 죽음과 인간의 구속, 3-4) 인간의 타락과 회심, 5) 성도의 견인. 여기서 멀러는 신조의 실재적인 순서가 '성도의 견인' 외에는 튤립의 머리글자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조건적 선택'에 대해서는 신조의 문구 그대로를 따온 것이라고 수긍한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신조의 본래 취지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첫번째 주제는 무조건적 선택만을 다루지 않는단다. 인간의 범우주적 죄성, 죄의 삯으로서 영원한 사망, 복음증거 방식으로 그리스도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의도도 핵심적인 주제로 언급되고 있어서다. 특별히 이 항목에선 불신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죄의 원인이 인간에게 있지 하나님께 돌려질 수 없음을 명토박아 둔다.

이어지는 두번째 주제는 그리스도 죽음을 죄에 대한 충분하고 완벽한 만족으로 여기면서 "온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충분한" 구원의 은혜로운 본질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충분성은 복음이 온 인류에게 선포될 것이라는 도르트 선언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실로 그리스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신조는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 멀러는 '제한적인 속죄(limited atonement)'라는 영어의 근대적 어구에 유감을 표명한다. 분명 도르트는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이들만이 은혜로 인하여 믿음을 가져 구원에 이른다고 밝히면서 불신의 과오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을 'limited atonement'라는 19세기식 영어표현 속에 구겨넣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당시의 표현 그대로를 존중하면 좋겠단다. 본문에는 구원이 인간의 선행이나 믿음의 선택이나 신적인 예지에 근거하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은혜로운 선택에 기초한 것이라는 내용이 언급된다. 하나님의 선택이 영원부터 신적으로 의도된 무조건성 및 불변성을 가졌음도 밝힌다. 정죄 혹은 저주는 전적으로 죄에서 비롯된 것이란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계획을 탐구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죄에의 슬픔과 의에 대한 갈증에서 온다고 말한다. 유기는 하나님이 영원부터 순전한 사람들을 버렸다는 식으로 표상되지 않는다는 등등의 내용들.

세번째/네번째 주제는 인간의 조건과 회심이다. 죄악된 본성을 가진 인간의 무능력, 특별히 의의 천상적인 기준을 충족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은 은혜의 무조건성 부분과 직결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전적인 부패'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도르트는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 선에 대한 지각을 가졌으며 그것을 성취할 의지도 지녔다고 말한다. 하여 멀러는 이를 인간이 자신의 죄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인간의 전적인 무능력 (The utter inability of human beings)' 교리라고 주장한다. 복음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구원에 이르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복음은 하나님이 죄로 부패한 인간을 되살리고 치유하는 주된 수단이다. 성례와 권징도 수단으로 언급된다. 물론 성례와 권징은 복음의 증인으로 기능한다. 말씀과 성례와 권징은 교회의 삼중적 표지이다. 교회의 삶과 활동을 규제하는 불쾌한 제한이 아니라 진정한 교회의 정체성을 표명하는 수단이다.

다섯번째 주제는 성도의 견인인데 여기서도 오해가 때때로 빚어진다. 여기서 성도의 견인은 죄에 대한 쉬운 승리나 구원의 첩경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란다. 오히려 신조는 중생이 성도들을 죄에서 완전하게 해방시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급히 지적한다. 성도의 삶은 무수한 실패와 지속적인 회개의 필요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신조가 가르치는 것은 궁극적인 구원이 좌초할 수 있는 인간의 일이 아니라 실패할 수 없는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주목한다. 은혜의 수단은 견인의 수단도 된다는 뜻이겠다. 결론으로 멀러는 도르트 신조가 성경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결코 스콜라적, 사색적 혹은 철학적 문헌으로 규정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고백서나 교리문답 성격과는 아주 판이한 쟝르여서 문헌적인 성격 규명이 간단하지 않다는 심상치 않은 여운도 남긴다.

도르트 신조에 대한 멀러의 이 단편글은 문서의 물리적인 역사성에 주안점을 두었다. 한 마디로 역사적 문헌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거다. 신조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신학자 개개인의 몫일 수는 있겠으나 신조 자체가 전달하는 내용과 강조점 자체를 가감하는 왜곡의 방식으로 그러지는 말자는 얘기겠다. 일리도 있고 수긍도 간다. 그렇다고 이것을 신조의 행간에서 감지되는 미묘한 의미를 탐구하고 해석하고 표명하는 일 자체를 접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문헌에 대한 멀러 교수님의 역사적 접근법 외에도 다양한 과제를 수행해야 할 학자들의 다른 유용한 접근법이 있고 그것이 존중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하여 문헌에 근거하여 끄집어낼 수 있는 가장 엄밀하고 심오한 의미를 탐구하되 신학적 정당화의 일환으로 신조 자체에 변경을 가하는 과한 태도는 경계해야 하겠다. 사실과 해석을 분명하게 구분하며 도르트 신조의 장점과 강점을 존중하되 기독교 진리의 심오함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한계도 지적하는 식으로 각자의 소임에 충실하면 좋겠다.

Richard Muller, "The Conons of Dort," Forum (2013, Winter) in Calvin Theological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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