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1일 일요일

제1원인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신다(잠21:1)

왕은 사회와 국가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원인들을 대표한다. 경내에 왕의 뜻과 무관한 사태나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고의 가시적 질서라고 할 왕의 마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말로 지혜자는 보다 고등하고 궁극적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질서에 부합하고 반응해야 할 자로 부름을 받았다. 물론 하나님은 권세의 근원이기 때문에 가까운 질서와 권위에 순응해야 한다. 그러나 왕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질서와 권위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기에 저항권이 우리에게 허락된다.

왕이 거짓과 불의와 불경과 포악을 행한다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왕의 배후에 하나님의 손이 있다고 하여 침묵하고 순응해야 되겠는가? 아니다.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기 위해 경찰권을 발동하는 방식의 무력적인 저항을 뜻하지는 않는다. 칼빈이 강조한 것처럼 우리의 저항은 말씀에 의한 저항이다. 강단에서 입술로, 세상에서 삶으로 공의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저항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왜곡되고 공의가 무너지는 때가 교회의 가장 교회다운 처신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어떤 이에게든 주신다"는 의미와 하나님이 궁극적인 근원이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질서와 원인이라 할 왕을 폐하기도 하시고 세우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이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두려워도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할 자로 알라는 뜻이기도 하다. 교회는 세상이 아무리 흉용해도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떠나지 않고 교회다운 교회로 남아 있어야 세상의 빛이다.

원인에 대한 규명이 정확하면 교회의 처신이 결정된다. 하나님은 모든 질서와 권위의 샘이시다. 세우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며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보여주는 교회가 있어야 세상은 캄캄한 흑암 속에서도 소망을 품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하나님의 권위를 두려워 하지도 않고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익집단 중의 하나로서 자신의 배를 신으로 삼아 배불리는 얍삽한 처신에 민첩함을 보인다. 그러나 내가 잘못본 것이리라. 그래도 교회인데 그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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