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월요일

어거스틴 죄론

히포의 주교에 의하면, 우리가 죄에 도달하는 과정은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제안(suggestione), 즐김(delectatione), 찬동(consensione). 이와 대응되는 죄의 삼중적인 양상은 마음 안에서의 죄(in corde), 행위 안에서의 죄(in facto), 습관 속에서의 죄(in consuetudine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마음으로 죄에 찬동할 때의 죄, 그 찬동이 행위를 옷입을 때의 죄, 마음이 그릇된 습관의 힘에 억눌릴 때의 죄로 구분된다.

제안은 기억이나 몸의 오감을 통해 일어난다(sive per memoriam fit sive per corporis sensus). 제안에서 즐거움이 생성된다. 마치 음식 앞에서 식욕이 자극되는 것과 일반이다. 즐거움을 지나 찬동까지 이르면 죄는 완성된다(plenum). 물론 찬동이 행위로 출고되지 않았기에 사람에겐 알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께는 그 찬동이 알려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마음의 묵상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여인을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고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죄가 적용된다. 행위로 드러나지 않으면 안심하는 태도의 소유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임에 분명하다. 성도는 사람의 눈에 행위로 발각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아니하고 심장과 폐부까지 벌거벗은 것처럼 온전히 아시는 하나님만 두려워 하는 자이다.

매혹적인 제안을 받고 위험한 즐거움을 느끼고 무지한 찬동의 손을 뻗어 죄를 거머쥐는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난다. 교회는 행위로만 들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찬동의 단계까진 얼마든지 접어든다. 이는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경외가 없다는 증거겠다. 찬동의 분량이 누적되면 버티던 절제의 뚝은 터지고 고인 찬동은 행위로 범람한다. 이미 공공연한 행위로 만인에게 들킨 교회들이 적지 아니하다.

더욱 두려운 것은 드러난 것은 앞으로 드러날 것의 빙산일각 수준일 수 있다는 점이다. 통회와 자복의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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