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3일 화요일

인생의 가이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시119:105)

앞으로 나아갈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사실에서 진로의 간단하고 명료한 열쇠가 말씀임을 확인한다. 말씀은 과연 인생의 길이면서 등불이다. 직장이나 진학을 늘 진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씀"이란 뻔하고 단순한 대답 말고 보다 구체적인 디테일을 갈구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도 우리의 궁금증은 늘 그런 진로의 개념을 돌쩌귀로 삼아 맴돈다.

말씀이 인생의 길이라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과 역사 전체를 조망하고 있는 지극히 크면서 디테일한 생의 가이드란 이야기다. 대답은 단순해도 내용은 방대하다. 물론 범사에 주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이란 한 개인의 큰 흐름에서 그때그때 나타나는 범사에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성공과 실패가 수시로 출입한다. 그것에 일일이 반응하면 인생의 격심한 굴곡에 우리의 희비도 덩달아 춤추는 변덕에 휘말린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전부가 어우려진 인생의 윤곽도 그려진다. 무엇보다 내 안에서 삶의 가치관과 일의 선호도가 달라진다. 설 자리가 보인다. 안보이면 보일 때까지 성경과 씨름하면 된다. 그리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대상도 시야에 들어온다. 들어오지 않으면 들어올 때까지 성경과 씨름하면 된다. 야곱처럼 환도뼈를 걸고 죽도록 말씀과 씨름하는 거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고 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의 해소는 무엇보다 근본적인 가치관과 기호의 수술이 급선무다. 이런 우선순위 문제는 나이의 제약이 없다. 아무리 연세가 있으셔도 늦지 않았고 불혹의 문턱을 넘어가면 바뀌지 않는다고 스스로 체면거실 필요도 없다. 가치관의 엔진을 교체하고 고작 3년만 그런 엔진으로 인생을 움직였다 해도 손해볼 거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참수형을 당한 도둑은 죽음의 문턱에서 가치관의 역전을 경험했다.

하물며 청년들은 더더욱 그러하지 아니한가?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챙기라는 사회의 유행성 독촉에 떠밀리지 마시라. 성경이 무관심과 게으름의 두툼한 먼지에 뒤덮힌 시간이 길었다 할지라도 지금 펼치시라. 사도들의 각오처럼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며 육의 낡은 가치관을 과감히 소각하고 믿음의 열조들이 줄기차게 고수하고 경주했던 거룩한 생의 대열에 뛰어들라. 젊은이 특유의 알콩달콩 관심사에 코뚜레가 껴 노예처럼 이리저리 끌려가지 마시라는 이야기다.

청년들은 창조자를 깊이 묵상함이 지극히 아름답지 아니한가. 진로에 대한 궁구의 손을 창조자에 대한 지식에까지 뻗지 아니하면 아무리 화려한 자기인생 살았다 할지라도 정작 인생의 조성자요 주인이신 하나님은 빠져버린 껍데기 인생의 허무한 가벼움만 입증할 뿐이겠다. 진로에 대한 청년들의 고민이 생의 자잔한 양태에 집착하면 직업이 신분이고 직위가 계급으로 비화되는 비정상적 문화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은 이미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 목격되는 현상이다.

주님의 말씀은 인생이 가야할 길이고 인생을 안내하는 빛이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에게 이끄는 인생의 가이드다. 그러니 말씀에 인생을 거는 판단에 주저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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