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월요일

이성의 우위 (질송)

독서목록: Gazali, Destruction of the Philosophers; Averroes, Destruction of the Destruction, The Agreement of Religion and Philosophy

아베로는 종교적 신앙과 철학적 이성 사이에 일종의 일치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질문: 철학의 합리적인 방법에 의해 신을 찾는다면 초자연적 계시가 있어야만 하는가?
답변: 아베는 아리스토 구분법을 따라 수사학적, 변증법적, 필연적 논의로 구분하고 각각에 대응하는 무리들로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영리한 언변만을 확신하기 쉬운 사람들: 이성보다 상상에 이끌리며 그들의 감정을 동요시킬 줄 아는 능란한 화술가가 그들을 움직인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성에 의해서 확신할 수는 없다. 이것이 종교의 필연성이 충만히 나타나는 지점이다. 종교와 계시는 이성보다 상상력이 강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철학적 진리일 뿐이다.

2) 변증법적 개연성에 개방된 사람들: 계시에 의해 가르쳐진 어떤 것도 검증과 과학적 지식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고자 한다. 왜 자기들이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믿어야 하는지에 관한 충분한 이유를 부여하려 한다.

3) 오직 수학자 및 형이상학 학자의 필연적인 증명만이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들: 만약 신앙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증명되고 만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앙일 수 없을 터이므로 계시의 진리를 증명하지 않는 그러한 행위는 정확히 말해서 신학 및 신학자의 적절한 기능이라 한다. 동시에 계시를 적어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증명 가능하게 나타내는, 그리고 계시를 그 반대보다 더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일부의 변증법적 정당화를 발견하는 것도 신학과 신학자의 적합한 기능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다소 철학적인 의상으로 입히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면 그들은 믿기를 중단할 것이다. 필연적인 합리적 증명을 결여한 것은 어떠한 것도 지식에 대한 갈증을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귀족적인 특권을 누리면서 당순한 신앙의 공상과 아울러 신학자의 변증법적 개연성의 배후에 있는 견고한 진리의 핵심을 조심스레 살피고 조사할 것이다. 신앙은 상상적인 인간이 합리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이다. 신학은 단순히 변증법적 방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혹은 형이상학 다음의 차선이다. 하지만 철학 자체는 순수한 이성의 증명에 의해서 확립된 절대적인 진리이다.

항상 철학자의 합리적인 사변은 계시가 침묵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아베로는 이성과 계시의 대립이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계시와 이성이 동일한 문제를 다룬다면 일치나 모순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철학자는 자신의 우월한 진리에 스스로 만족하고 간직하고 대중에게 설파하지 말고 신학자와 싸우지도 말고 대중의 호기심도 차단하고 단순한 사유의 소유자가 요동하지 않도록 아베로는 적당히 가리란다. 심지어 아베로는 철학서의 공적인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아베로는 자신이 평화롭게 철학할 수 있는 사회적 질서를 원하였고, 인간이란 단순히 사적 윤리의 어떤 추상적인 규약을 배운다고 해서 문명화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종교가 단순히 철학적 진리에 대한 조야한 접근이라 여기지도 않았다. 종교는 철학에 의해서도 충족될 수 없는 결정적인 사회적 기능을 가졌다고 보았다.

예언자는 신의 존재를 전혀 증명하지 못하지만 그들은 신의 존재를 알며 그들의 말을 모든 사람들이 믿는다. 그들 자신은 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관해 결코 질문하지 않는다.

철학적 진리는 절대적인 진리이며, 코란과 코란의 신학적 해석은 그에게 순수한 철학에 대한 통속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그래서 심한 박해도 받았다.

질송은 아베로의 이러한 어법이 어떻게 신학자를 위로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파리대학 문학부 교수들은 철학의 결론이 진리라고 학생에게 결코 말하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한 결론은 자연적 이성의 필연적인 추론에서 나온다는 사실만 말하였다.

질송은 "이중적인 진리 이론을 주장한 단 한 사람의 중세 철학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베로적 견해를 담은 219개의 명제 (1277년에 정죄됨): 40) "철학적인 삶보다 더 높은 삶은 없다"; 154) "세상에는 철학자의 지혜 이외에는 아무런 지혜도 없다"; 37) "오로지 자명하거나 아니면 자명한 것에서 연역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 175) "기독교 계시는 배움에 대한 장애물이다"; 153) "신학을 앎으로써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52) "신학은 우화를 바탕으로 삼는다."

질송은 아베로와 그의 추종자가 없었다면 중세의 지적인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아퀴나스 신학의 진면목은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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