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8일 일요일

중세의 예정론 논쟁

고트샬크(Gottschalk, d.869):

1. 나이가 들면서 수도원 탈퇴권을 요구했다. 수도원의 극심한 반대에 봉착했다. 반대의 주창자는 알퀸의 학교를 이끌던 고트샬크 스승, 수도자 규칙서를 편찬한 라바누스 마우루스(Labanus Maurus)였다.

2. 당시 알퀸과 [카롤링거 전서]의 저자들은 어거스틴 사상에 의존했다. 방식은 어거스틴 구절들을 발췌, 초록, 선집에 만족하는 것이었다. 빈약하다.

3. 고트샬크는 어거스틴 예정론에 가치를 부여하려 했다. 이에 알퀸의 제자들은 말과 폭력으로 대항했다. 먼저 고트샬크 입장을 왜곡했다. 즉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정해 놓았다고 주장하며, 신이 영원한 삶이나 영원한 죽음을 예정해 놓았다는 것이 고트샬크 입장이라 하였다.

4. 알퀸의 제자들: 신은 선하고 옳으며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은 선하고 모든 인간의 구원을 원한다는 입장이다.

5. 그러나 고트샬크 입장은 이중 예정론 (gemina praedestinatio) 즉 '인간이 인간이 알 수 없는 신의 결정에 따라 신국에 속하거나 악마의 종자에 속한다'는 후기 어거스틴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6. 그러나 고트샬크 입장은 사회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원한 운명이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예정되어 확정되어 있다면 결국 그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지 않겠냐는 논리가 작동한다. 확립된 질서는 위험에 빠지고, 카롤링거 왕조의 문화도 방향을 잃게 되리라는 느낌의 확산은 어거스틴 추종자인 고트샬크 쪽을 겨냥하게 되었다.

7. 그리스도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을 위해 죽었다는 생각은 칼 대제의 제국에 내재해 있던 선교의 성향과 영통확장 명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8. 결국 고트샬크는 주교회에서 단죄되고 말았으며 라바누스는 마인츠에 모인 주교들 앞에서 채찍으로 그를 치게 하였다.

9. 이후로 힌크마르(Hinkmar) 교구장의 손에 넘어갔다. 수도원에 갇혀서 생애를 보냈다.

10. 힌크마르는 칼 대제의 왕립학교에 있던 어떤 석학에게 이 논쟁 전체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그의 이름은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Johannes Scotus Eriugena, d.877)였다.

11. 에뤼게나 입장: 1) 하나님의 절대적 단순성에 근거하여 이중 예정론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2) 신은 영원하기 때문에 미리 보거나 결정하지 않으신다; 3) 죄의 예견과 지옥의 예정은 이단적인 주장이다; 4) 일체의 죄와 악은 본질적인 것도 아니며 실존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단순한 결핍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미리 알려질 수도 없다; 5) 신은 선이요 흘러 넘치는 선이며 죄인에 대한 진정한 벌은 그 죄인이 자신에게 내릴 뿐이며 공간적인 것으로 상각되는 지옥에서 이뤄지지 않는 것이요 자신의 후회가 바로 지옥이다; 6) 이중 예정이 없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어떠한 예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2. 에뤼게나 다른 입장: 1) 유일신의 절대적 순수성, 무시간성, 선성을 강조했다; 2) 악으로서 악은 실존하지 않으며 악은 단지 존재의 결핍일 뿐이라고 했다; 3) 인간은 사물이 아니라 통찰-의지-기억의 생생한 관계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4) 이 가운데 우연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떠한 것도 제외될 수 없다, 인간은 결국 자유의지로 생각되어야 하며 자유는 인간을 구성하는 본질이다; 5) 신은 그 스스로 모순됨이 없이 인간을 원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자유를 취할 수는 있다; 6) 인간은 그 자신을 스스로 선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 바로 그 가능성이다.

13. 1210년부터 에뤼게나 저작은 소유하는 것도 사형이고 강의하는 것도 사형에 쳐해질 정도로 엄격한 규제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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