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0일 수요일

성경해석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갈증에 시달리고, 쉬 손아귀에 잡히기에 찾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권태에 빠진다. 성경은 성령의 탁월하고 심오한 조율로 구성되어 그 안에 보다 명료한 구절들은 우리의 기갈을 해소하고 다소 애매한 구절들은 우리의 까탈스런 입맛을 일소한다." 이는 어거스틴 할배의 교훈이다. 성경의 애매한 부분도 이유가 있고 명료한 부분도 다 이유가 있다. 이러한 성경의 조화로운 난이도 배합은 어쩌면 우리의 짐작보다 더 심오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경의 개별 구절들이 다른 구절들의 조명으로 의미가 밝아지고 그렇게 하는 것만이 성경의 적법하고 요긴한 사용인 것처럼만 생각하면 마음의 한 구석이 허전하다. 의미의 난이도 문제를 넘어 각 구절들의 명암과 색조가 있는 그대로 조화를 이루어서 각각이 고유한 기능과 분량을 따라 성경 전체의 의미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도 합당한 해석학적 조명을 받아야 하겠다. 일부 학자들의 문맥타령 촉발할 가능성이 농후한 주장인 줄 안다.

성경을 책으로 이해하는 인문학적 관념에 한번도 반론의 옆차기를 날려보지 않은 분들에게 성경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란 바울의 '성경책' 개념이 귀에 거슬릴 수 있겠다. 영어로 말하자면, 성경은 Bible이나 Scripture가 아니라 The Word of God이다. '책'을 해석하는 방식과 '쓰여진 글'을 이해하는 방식은 서로 유사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방식은 책을 구분하고 장을 나누고 절을 쪼개고 단어를 해부하는 환원주의 방식과는 대단히 다르다. 그렇다고 전체주의 사상처럼 부분들의 집합이나 조각들의 맞춤에서 부분들의 합 이상으로 생산되는 개념의 잉여를 취하는 방식도 아니다.

왜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성품이고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의 존재이고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빛이고 하나님의 계시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지혜이고 하나님의 소통이고 하나님의 행위이고 하나님의 임재이다. 칼빈이 언급했던 '성경과 더불어, 성경을 통하여, 성경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을 인식과 행위 차원과만 결부시켜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 성경의 주어인 동시에 성경 밖에서 그 성경을 조명하고 계신 하나님 자신이 배제된 어떠한 해석도 성경의 본래 의미와 목적을 벗어나게 되어서다. 

하나님이 조절하신 명암과 색상에 맞도록 성경의 각 구절들을 이해하되 동시에 그 조각들이 그 모든 조각들의 주어이신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조화롭게 통일되는 접근법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거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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