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여호와를 경외하라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부족함의 전적인 부재 사이에 시차가 없다는 게 중요하다. 원인과 결과의 틀로 해석해도 의미의 자연스런 흐름에 역류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의 간격이 개입되면 경외를 투자하고 풍족을 건진다는 상업적인 발상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무의식적 계산이 발동한다. 당연히 마음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거래는 제어되기 어렵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여호와 경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순수성을 상실하면 끝장이다. 사단이 군침을 흘리며 그런 끝장을 노리는 건 당연하다. 사단에게 온 천하와 그 영광을 통째로 제안하는 건 이미 예수님께 맞장의 안다리를 걸었던 광야에서 노출된 전략이야. 그런 남루한 흥정에 예수님은 결코 수락의 악수를 내밀지 않으셨어.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만을 섬기라는 것이 사단과 맞서는 최상의 방패였고 창이었지.

우둔한 사단은 자신의 음흉한 속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참신한 전략도 미련 없이 묵살해. 전략에 '일관성'이 있다는 이야기야. 그러나 그토록 변하지 않는 전략을 구사하는 사단의 미련함에 늘 걸려 넘어지는 나를 보시는 주님의 심경을 어떠실까?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사단의 이 가증한 냉소를 나 때문에 듣고만 계셔야 하는 말도 안되는 사태의 원흉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동기를 관리하고 그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영적 전쟁의 살벌한 전방이야. 하나님은 마음의 순수한 동기를 살피시고 그런 동기의 부패는 모든 것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사단의 노림수가 당연히 다른 모든 것들을 거래의 대상으로 제시하며 그것만은 뺏고자 할 때 그 일순위에 해당하는 동기 허물기를 고집하는 건 너무도 당연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부족함의 전적인 부재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가 그것 이상으로 높여질 수 없는 작정의 궁극적인 방향이요 창조의 본질적인 원리이며 모든 세대에 변하지 않는 생의 최종적인 목적이기 때문이지. 달리 말하면 여호와 경외함의 부재는 천하와 그 모든 영광을 취한다 하더라도 부족함의 총체적인 충만이요 모든 것들의 상실이다. 이보다 더 탁월한 부족함의 부재 원리를 아시면 재보해 주시라. 

여호와를 경외하라...인생에게 주어진 최고의 복이 명령의 옷을 입었다. 다윗에겐 자율성의 침해를 수반하는 명령이라 할지라도 음율에 실어 노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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