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신학하는 태도

어떤 신학생이 신학하는 태도와 고전읽기 및 독서법을 물었다.

1. 일단 M.Div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간은 짧고 과목과 과제는 많습니다. 기본기를 다지는 기간이기 때문에 수업에 충실하며 주어진 과제를 소화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더구나 **그곳에서 공부하고 계시다면 교과과정 및 독서 리스트에 유의미한 신학적 결함은 없을 것으로 사려됩니다. 과정에 충실하자, 이게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입니다.

2. 고전 문헌들을 접하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는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한국 신학교의 아쉬운 점은 어떤 신학적 관점에서 걸러진 교재와 참고 문헌들을 쓴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휠터링 과정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안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도가 지나치면 학생들의 신학적 변별력 감퇴라는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습니다. 텍스트야 책이니까 나 자신이 주도할 수 있다지만 목회하는 현장에는 다양한 이단들의 게릴라에 가까운 기습과 공습이 속출하기 때문에 대체로 법서의 법조문을 적용하듯 공식의 기계적인 대입으로 처신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부들과 중세 학자들과 종교개혁 인물들의 글을 직접 읽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물순물은 걸러내고 양분은 섭취하고 대응의 지혜는 길러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벌콥이나 바빙크란 거성들이 정리한 내용의 지속적인 독서는 하되 온실 속에서만 자란 체질이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의 신학적 야성은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좋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그곳의 교과과정 편성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부족하다 생각하여 다른 고전들을 참조하고 싶다면 일단 주어진 과제에 충실한 이후에 여력으로 그리함이 어떨까 싶습니다.

3. 신학을 공부하는 자세는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겸손과 성실한 탐구의 정신줄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진리 앞에서는 인간의 성정과 상식이 전복되는 댓가라도 과감히 지불할 수 있는 자세를 말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기도의 호흡을 중단하지 않는 것은 **님도 잘 아시는 기본기 중에서도 신학의 골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위에 신학적 역량을 키워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를 변별하는 지각의 근육이 서서히 생깁니다. 이것은 경건의 당일치기 연습으로 수확할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일평생 걸리는 일입니다. 신학생의 신분으로 있을 때에 그런 건강한 신학공부 체질이 마련되지 않으면 일평생 곁길로 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다 아시는 내용을 제가 많이 말하지는 않았는지~~~요. ^^ 함께 공부하는 동료로서 서로에게 좋은 자극과 도움을 주고 받으면 좋겠네요. 주님의 지혜와 총명을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4. 아! 책읽는 방법이나 이해속도 이야기를 안했네요...^^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서...ㅎㅎㅎ 저는 속독을 하는 편이 아닙니다. 정독을 하며 생각의 입술을 움직여 저자의 자리에서 말하듯이 읽습니다. 저자와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판단의 각을 세우며 읽으면 내 신학이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를 읽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반면 저자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책의 본의를 더 잘 깨닫지만 동시에 잘못된 신학에 노출되고 물드는 위험성도 그만큼 높습니다. 이런 일장일단 상황에서 저는 후자를 택하면서 전자의 장점을 살리는 독서를 했습니다. 후자의 단점을 피하기 위해서는 양서를 선택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면 타인의 글에 신학의 마음을 열어도 그리 위험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자의 의도도 깊이 읽으면서 위험한 신학도 경계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해의 속도는 저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일단 진리의 진정한 소통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일이기에 성령의 조명을 받도록 늘 기도하며 주님 발 앞에서 독서하는 것이 첩경일 듯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지식의 전달은 있어도 진리의 전달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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