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4일 목요일

심은대로 거둔다

갈라디아 6장 앞부분을 사용해 마련된 새벽 식탁은 풍성하고 꼼꼼했다. 한 토막을 내 버전으로 옮긴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법칙의 보편성은 모든 합리적 인간이 인정하는 경험적인 사실이다. 이는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오르고 부지런히 일하면 고소득을 올리고 꾸준히 운동하면 건강하게 된다는 당연한 일상적 증거가 도처에 깔려 있어서다. 그러나 이런 경험과 해석은 방향보다 수고의 분량에 의존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하여 바울의 강조점은 육체를 위하여 심느냐 성령을 위하여 심느냐는 방향성에 있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심느냐는 수고의 방향과 목적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육체의 유익을 위하여 썩어 없어지는 열매의 씨앗을 그냥 뿌리는 정도를 넘어 무시로 살포하고 다닌다. 대체로 무의식 중에 벌어지는 살포라 내가 그런 씨앗을 심었다고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준하는 보응이 닥치면 허탈한 심정으로 당황한다. 나아가 억울하단 느낌과 더불어 하나님의 공평을 삐딱한 시선으로 째려보게 된다. 공평의 하나님이 출장 중이라는 느낌을 받아서다.

어쩌다가 한국의 교회가 한 교단의 총대들이 모인 총회에 총기도 출석하고 용병도 동원되는 지경까지 갔느냐며 신발짝 벗고 바닦을 치며 탄식할 필요 없다. 기업가의 이윤과 노동자의 생계가 정면으로 대립하는 회사의 노사갈등 현장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 연출된 배후에 지금까지 교회가 무엇을 위해 복음의 씨앗을 심어 왔는지를 냉엄하게 성찰하고 돌이킬 수 있다면 지나가던 개도 고개를 내저을 우리교회 모습조차 우리를 돌이키게 할 하나님의 장중에 잡힌 긍휼의 수단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에겐 배가 신이었다. 아닌 분들도 계시지만, 정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자.

오늘 설교의 백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을 영생의 씨앗으로 심으셨고 열매를 거두는 수혜자는 우리라는 대목이다. 우리는 죽어 마땅하고 이미 죽었고 하나님과 원수였던 자리에 도도히 서 있었으나 하나의 밀알로 산화하신 주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은혜를 취하고 누리는 수확자의 신분이 되었다는 거 말이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동일한 주체가 심고 거두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고 땀 흘리는 자와 수확하는 자가 다르다. 은혜의 법칙이 자연법을 압도하는 경우라 하겠다.

심는 자가 다르고 거두는 자가 다른데 우리는 수고함이 없이도 주님과 더불어 동일한 기쁨과 영광을 누리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남은 여생을 심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육체를 위해 썩어 없어지는 것에 목말라 허탄한 파종의 유혹을 걷어차고 영원토록 썩지 아니하는 열매를 기대하며 우리의 생명을 주님께 의탁하는 씨뿌림이 성도에게 마땅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은혜를 수확하는 자의 삶은 타인으로 동일한 은혜의 수혜자가 되도록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용서의 씨앗을 뿌리는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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