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푸코도 읽고 니체도 읽으라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을 통해 문서(혹은 언표)와 사물과 사태에 대한 의미해석 방법론에 과감한 딴지를 건다. 기존의 해석학적 방식이 문법적인 관계들, 명제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들, 언어들 사이의 메타 언어학적 관계들, 어구들 사이의 수사학적 관계성들, 유사성들, 규칙성들, 연관성들, 정신이나 의식구조, 발전이나 진화의 개념들, 경향의 개념들, 반복 개념들, 인과율 개념들 등을 해석학적 수단들로 삼았던 반면, 푸코는 오히려 언어표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비약들, 배제들, 극한들, 특이성들, 불연속들, 비약들, 희박성들, 고유성들 등을 그대로 존중하고 거기에 인위적인 규칙이나 질서와 원리를 함부로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한 푸코 나름의 해석학적 전략이다. 그러니까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 안에서는 모든 권위와 질서와 습관과 관행과 상식과 원리와 경향이 모두 거절된다. 포스트 모더니즘 원흉, 맞다. 그러나 뭐 그렇다고 포스트 모던 사상을 급히 소환하여 푸코가 그 출처라며 몰아붙일 일은 아닌 듯하다. 개인적인 생각에 푸코의 고고학적 접근에도 건질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절충주의 입장을 견지하는 게 지혜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과장된 거품일 뿐인 것들이 마치 권위와 질서와 규칙과 규범인 양 해석학 바닦에서 기준으로 군림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가상들을 있는 그대로의 실체에서 거두어 내는 일에 푸코의 탈권위적 태도는 오히려 유용하기까지 해 보인다.

원인과 결과라는 조건만 충족되면 모든 비밀과 해석이 다 풀어진 양 지적 허영을 떠는 전지(omni-scientia)의 소유자가 얼마나 많은가! 나도 자유롭지 않은 대목이다. 푸코를 읽으면서 경계해야 할 것들도 많이 보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예리한 통찰력도 상당수 경험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식의 고고학] 일독을 운운했다. 같은 맥락에서 '신은 죽었다'는 도발적인 언사의 주인공 니체도 꼼꼼하게 읽어야 할 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귀에 달콤한 인물의 목소리만 찾는다면 정작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에 직면할 기회는 요원하다. 물론 성경에서 우리의 가장 은밀한 실상을 다 경험한다. 그러나 심지어 성경 속에서도 해석학적 차원에서 회피할 가능성은 여전히 농후하다.

기독교를 나쁘게 말하고 왜곡하는 사람들과 문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보다 엄밀하게 소망의 말을 겸비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경청의 귀를 더 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들을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될 일이다. 진리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외연을 최대한 넓히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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