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교의학에 대한 바빙크의 생각

고전적인 학문의 체계와 스콜라적 논제법(locus method)이 절충된 멜랑톤의 보편논제(Loci communes) 방식의 교의학적 한계를 바빙크는 ‘학문적인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교육이 부족했던 자들과 성경의 지식 전하기를 소원하는 자들에게 이바지한 점도 있었다’는 정도로 지적했다. 일반적인 논제들을 열거하는 방식의 교의학 체계는 루터파와 개혁파 진영에 적극 수용했던 방식이긴 하나 믿음의 진리를 보다 조직적인 규모로 다룸에 있어서는 결점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런 표제는 존속될 수 없었다고 진단한다.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보여주지 않고 주제의 산만한 배열처럼 보이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쯔빙글리 같이 ‘해제(commentarius)’라는 표제와 칼빈의 ‘강요(institutio)’와 같은 표제도 기독교의 진리체계 전체를 담기에는 과정적인 것이었다. 보다 좋은 진리의 그릇을 만들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교훈적인(didactica),’ ‘조직적인(systematica),’ ‘이론적인(theoretica),’ ‘실증적인(positiva)’ 등의 형용사적 표현들과 ‘교의학적(dogmaticia)’ 같은 표현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서 ‘dogmatica’란 말은 ‘도그마(δόγμα)’란 헬라어 용어에서 유래한 말인데 ‘정관(statutum), 결정(decretum), 정해진 뜻(placitum)’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세푸스 문헌에 보면, 유대인은 어릴 때부터 구약책을 ‘하나님의 도그마들(θεοῦ δόγματα)’로 여겼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도그마의 의미에 대해 바빙크는 특별히 키케로의 개념이 정당함을 지적한다. 즉 도그마는 ‘확고하고 고정되어 결정적인 것이며 어떤 이유로도 움직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바빙크는 도그마의 권위가 어떠한 사람의 교훈이나 교회의 선언 혹은 확정에도 의존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모든 신학적 도그마가 귀착되는 원리는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principium, in quod omnia dogmata theologica resolvuntur, est: Deus dixit).’ 이러한 원리에 기초한 도그마를 확립하는 교회의 역할은 ‘주권적인(souvereine) 것이거나 입법적인(wetgevende) 것이 아니라 수종적인(bedienende) 것이며 선포적인(declaratorische) 것이다.’ 교회를 통하여 증거되는 진리는 교회가 깨달았기 때문에 도그마가 아니라 그 진리가 오직 하나님의 권위에 의존하기 때문에 도그마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교회가 고백하고 교의학 학자들이 발전시킨 도그마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진리와는 동일할 수 없다. 이는 교회에 약속된 성령의 인도가 있지만 인간의 오류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헤겔은 모든 역사와 도그마가 하나의 절대적인 이념에 필히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불변적인 것은 없고 다만 영원히 되어지는 것만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념론적 토대 위에서 ‘도그마는 그 모든 역사를 통하여 하나의 거대한 오류요 치명적인 잘못’이란 비판적 견해가 고개를 들었다. 특별히 하르낙은 자신의 교리사 저작에서 ‘도그마는 복음의 바탕에 있는 그리스 정신의 배설물’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당시 도그마에 대한 저항의 이러한 급물살이 현대의 유럽 지성사를 휩쓸고 있었지만 바빙크는 ‘도그마에 대한 반대는 동일하게 도그마에 반대한 반도그마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언제나 지독한 도그마적 형태로 존재할 뿐이라’고 하였다. 도그마의 보다 넓은 폴라누스 개념에 따르면, 도그마는 ‘성경 안에서 파악되는 모든 것, 즉 복음과 율법의 가르침(doctrina evangelii et legis)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합의들(conciones)과 거룩한 역사(historiae sacrae)의 가르침을 포괄하고 있다.’ 바빙크는 이렇게 넓은 의미의 도그마 개념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수준의 개념일 뿐이란다. 즉 도그마의 자료와 내용을 알지 못하면 아무런 유익도 없을 수준의 개념이란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교의학의 내용을 논하게 되었는데 종교개혁 인물들은 주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Deo vivere per Christum), 종교적 경건(religio), 하나님 경배(cultus Dei)’를 교의학의 내용으로 취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신학의 주관적인 관점이 자라서 칸트에게 도그마는 ‘개인적 도덕적 동기들에 의존하는 신앙의 확신’일 뿐이며,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지식이나 행위로 보지 않고 특별한 느낌(een bepaald gevoel)’으로 보았으며, 도그마는 ‘주관적인 감정 상태의 묘사이고 종교적 느낌의 성문화요 사고하는 의식 속에 있는 주관적인 경건에 대한 반성들’일 뿐이었다. 과학의 새롭고 실증적인 견해가 도그마에 대한 이해에 범람하게 되었다. 리츨이 대표적인 인물이며, ‘교의학은 과학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기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과학이 될 수는 없다’는 대체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세상은 과학적 객관성 추구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런 흐름에 따르면, 신학이 교육의 현장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모양새를 갖추어야 하고 그러려면 모든 ‘종교적’ 편견들을 제거해야 하고 성경이나 고백이나 신앙을 내용으로 가지지 않는 무편견의 연구를 통하여 종교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을 내용으로 갖는단다. 신학을 과학으로 여기는 것은 이미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의 과학적 신학은 비록 토마스가 천사와 인간, 하늘과 땅, 모든 피조물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과학들이 취하는 방식과는 달리 ‘원리와 목적을 지향하듯(ut ad principium et finem)’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관계성을 사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의학 논의를 접으면서 바빙크가 내리는 결론은 ‘교의학이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과학적 체계, 자세히 말한다면 기독교적 입장에서 하나님이 자신 및 자신과의 관계 안에 있는 것들로서 모든 피조물에 관하여 그의 말씀에서 교회에 계시하신 지식에 대한 과학적 체계’라는 것이다.

이런 바빙크의 입장에 반대하여 ‘교의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내용을 대상으로 삼으며 이는 결코 과학이 아니며 하나의 체계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베를린 신학자 카프탄(Julius Kafta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렇다고 바빙크가 카프탄의 교의학 개념이 경건한 감정의 상태들에 대한 묘사나 종교적 경험들에 대한 사색이나 개인의 가치판단 위에 세워진 종교적 세계관 정도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카프탄이 생각하는 교의학을 계시의 권위에 기초하여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강조하고 설명해야 하는 하나의 규범적인 과학으로 이해했다. 바빙크가 이해한 카프탄의 첫번째 견해에 따르면, 종교개혁 이전과 정통주의 시대에는 신앙과 도그마와 교의학이 지성주의 견해로 사로잡혀 있었단다. 즉 종교적 진리가 하나의 교리로서 그리고 하나의 과학적 체계로서 과학의 결과나 역사적 사실과 같이 오성적인 방식으로 수용되던 시대라는 것이다.

반면 종교개혁 시대는 지성주의(intellectualisme) 경향을 복음적 신앙의 주의주의(voluntarisme) 원리로 바꾼 시대란다. 카프탄의 두번째 견해는, 도그마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의 표현이며 이러한 근원 때문에 지성적 과학적 성격이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성경의 계시, 신앙, 도그마 순이다. 세번째 견해에 의하면, 교의학은 ‘하나님에 대한 과학이 아니며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과학적인 체계도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신앙이 지식이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긴 하지만 특별한 종류의 지식이며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과 도덕적 의지의 실재성을 통해 얻으며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가 과학적 영역에서 얻는 지식과는 판이하게 구별되는 지식이라 하였다.

카프탄에 의하면, 과학적 지식은 ‘사실의 강요’에 의존하고 있지만 종교적 지식은 ‘도덕적 경험의 방식으로 의지의 행위를 통해’ 취득된다. 나아가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이지 앎의 대상은 아니란다. 그러므로 교의학은 하나님에 대한 과학이 되고자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신앙에 대학 학문으로 머물러 있어야 하며 신앙의 지식은 항상 내적 생활과의 관계성 속에서 해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프탄의 견해에 대하여 바빙크는 그가 신앙의 길에서 우리에게 영적으로 소유되는 종교적 지식에 대한 독특성을 강하게 변론한 것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신앙이 계시에 의존한 것이며 권위에 있어서 계시가 교의학에 우선하고 있음을 추구했던 점도 수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탄이 정통주의 입장에서 수용되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인데 그 이유는 카프탄 스스로가 ‘자신의 원리를 적용함에 있어서 의구심을 가졌으며 계시와 성경의 권위를 깨뜨린 것’에 있다고 바빙크는 지적한다. 즉 신앙이 지식의 샘이 아니고 유기적인 기관일 뿐이라고 명토박아 두면서도 카프탄은 계시의 우선성을 후순위로 밀어내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바빙크는 교의학이 ‘하나님의 지식의 체계’라고 주장한다. 풀어서 말하자면, 하나님이 자연의 현상들과 역사의 사실들과 같이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일 수 없다는 카프탄의 올바른 지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스스로를 행위와 언어로 계시했고 그런 계시 안에서 하나님의 지식이 객관적인 차원에서 파악되는 것처럼 그렇게 계시된 하나님의 지식을 교의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것이다.

카프탄이 교의학을 신앙 밖으로 밀어낸 이유를 바빙크는 과학에 대한 카프탄의 잘못된 개념에서 찾는다. 즉 카프탄은 칸트를 인정하며 선험적인 것은 인식될 수 없고 과학은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다른 것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경험론적 견해에 경도되어 교의학은 하나님의 지식 자체를 대상으로 삼은 과학일 수 없고 신앙적 경험에서 얻어진 지식에 대한 과학만이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바빙크는 교의학이 다른 과학들과 구별되는 독특성을 가졌다고 해서 과학의 영역에서 전적으로 배제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계시된 지식은 과학적 탐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요구하고 있단다. 교의학의 과학성을 촉구하는 '계시된 사실들의 강요'가 있다.

물론 인간의 언어로 고정시킬 수 없는 개념을 ‘체계와 체계적인 구성’으로 억압하여 ‘내용이 형식에, 현실성이 이념에, 지식이 의지에 희생을 당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카프탄이 말하듯이 체계의 몰록(Moloch)을 경계하고 ‘진실된 철학은 체계의 형식으로 담아낼 필요가 없다’는 플라톤의 사유는 무시하지 말아야 하겠다. 그렇다고 이런 사상을 오용하면 안된다. 체계가 있으면 신앙적 명제들이 없고 신앙적 명제들이 있으면 체계는 없다는 카프탄의 기괴한 이원론은 그런 오용의 사례이다. 사실 카프탄과 같이 종교의 본질, 기독교의 본질, 중생의 사실, 종교적 경험 등에서 신앙의 진리들을 도출하려 한다면 교의학에 체계의 필요성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교의학은 실증적인 과학이고 모든 소스를 계시에서 얻으며 그 내용을 계시 외에 사변을 통하여 변경하고 유포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바빙크가 보기에 하나님의 사상은 서로 모순될 수 없고 필히 그 자체 안에 유기적인 통일성을 형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상들을 고찰하고 그것의 통일성을 추적하는 것은 교의학 학자의 거부할 수 없는(onafwijsbare) 과제’라고 강조한다. 카프탄이 교의학에 있어서 모든 체계를 반대한 것은 비록 당시 신학자들 및 철학자들 대부분이 범하였던 체계적인 구성의 오류를 꼬집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찾아가는 과학적 탐구를 배제하는 지점까지 나아간 것은 과도한 것이라고 바빙크는 해석한다.

카프탄의 체계적인 구성에 대한 반대는 우리로 이런 교훈을 붙들게 만든다. 즉 ‘교회의 고백과 각 개인의 교의학은 무오하지 않고 성경에 종속되어 있으며 당연히 성경과 동등하게 설 수 없다. 그것은 진리와 일치하지 않고 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결함 있는 재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과 교의학 사이에는 신앙이 자리하며 혹은 신앙의 근거(ratio fidelis)가 그 사이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도 그렇지만, 바빙크 시대에 발견되는 ‘교의학의 결점은 교의학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Deus dixit)을 터무니 없이 약하게 높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교의학의 과제와 독특성에 대한 망각이 교의학을 무시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카프탄의 뾰족한 지적에 바빙크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모든 지식에 뛰어난 그리스도 사랑을 배우고 알도록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도록 과학의 축적 속에서도 다양한 겹의 신적인 지혜가 있음을 고백하게 하는 일’은 교의학을 통한 교회의 사명에 속한다고 바빙크는 정리한다. 바빙크는 종교개혁 이전과 정통주의 시대에 지성주의 견해가 주도하고 있었다는 카프탄의 지적에 아무런 교정을 가하지 않는다. 나는 카프탄의 견해에 동의하기 힘들다. 이는 중세도 그렇지만 정통주의 시대에도 주지주의, 주의주의, 신비주의, 경건주의 등등의 경향들이 혼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셀름, 보나벤처,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버나드 끌레르보 등의 거물들이 저술한 글들을 읽어보면 곧바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론과 경건과 실천이 종교개혁 시대에는 물론이고 정통주의 시대에는 보다 본격적인 통합의 모양새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무수한 문헌들을 보면 지성주의 견해가 독주하고 있었다는 카프탄의 진단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바빙크가 교의학을 성경에 기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에 합당한 차원까지 높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에 충실한 규범적인 과학으로 규정하는 것에 전적인 동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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