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Summa 이성론 by Muller

Richard Muller, “The dogmatic function of Thomas’ Proofs,” Fides et Historia 24 (1992), 15-29. 

멀러 교수님은 먼저 신존재 증명이 칸트 철학의 결과로서 개신교의 신학 체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아퀴나스 신학처럼 17세기 정통주의 교의학 안에서는 신존재 증명이 신론에 들어가는 도입부에 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먼저 신학 서론이 언급되고 성경론이 길게 설명된 다음에 비로소 신존재 증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아퀴나스가 ‘증명’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신론을 비롯한 다양한 적들을 거절하기 위한 것이지 기독교 신앙의 체계나 기독교 교리를 정초하기 위한 토대로 삼았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아가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 도입은 무신론의 광란을 잠재우는 부분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보다 적극적인 면에서는 이성이 가지는 신학의 체계 속에서의 도구적 기능의 가능성도 열어 주었다고 평가한다. 멀러는 Summa가 신존재 증명으로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Summa 전체의 내용이 ‘거룩한 가르침(Sacra doctrina)’이라는 규정으로 시작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토미즘에 대한 근현대 개신교 학자들의 평가가 간과하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측면임을 언급하며 현대 학자들의 부주의를 비판한다.

아퀴나스는 말한다.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는 것들은 이성으로 추구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은 믿음으로 수용될 수 있다.” 실재로 Summa의 서론 전체는 성경과 계시가 거룩한 교리의 기초임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Summa가 철학과 자연적 이성으로 시작하는 신학의 체계라는 해석을 단호히 거절하는 내용이다. Summa의 순서는 이렇다: 하나님, 창조, 구속. 멀러는 지적한다: 아퀴나스는 믿음을 일으킬 목적으로 신존재 증명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존재를 수용하는 것은 믿음의 문제라고 말한다.

왜 개신교 신학 안에서는 신존재 증명이 아퀴나스 본연의 목적과 의도를 이탈하게 된 것일까? 멀러는 멜랑톤과 그의 제자 켐니츠를 언급하며 그들이 신존재 증명을 창조론에 배치하는 바람에 그 본연의 교의학적 기능이 희미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신존재 증명을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묵상하는 형태로 간주하게 되었다. 비록 우르시누스와 폴라누스와 게하르드 같은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자에 의해서 신존재 증명의 위치는 신론 앞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나 이성의 교의학 속에서의 도구적 기능은 이미 크게 손상되어 개신교 신학에서 회복되지 못하게 되었다는 아쉬움을 표한다.

멀러는 신존재 증명에 대한 벌콥이나 바르트나 베버의 부정적인 입장들이 그 증명의 본래적인 기능을 오해한 결과라고 말한다. 이성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이성도 주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이성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경건을 과시할 목적으로 이성의 잘못된 사용을 거절하며 이성 자체도 버리려고 한다. 주님께서 주신 것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신 그 어떤 것도 정결하고 선하다. 말씀의 빛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용되는 이성은 우리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가장 탁월한 선물의 하나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성 자체를 문제시 한다면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로 인하여 그것을 그릇되이 사용하게 된 것을 회개하고 이성 본연의 목적을 회복하는 것이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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