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일 목요일

아름다운 기도문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마8:3)

문둥병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예를 갖추며 청원의 입술을 열었다. '당신이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황금의 입술'이라 불리우는 교부는 언어의 귀재답게 '당신이 하나님께 구하시면(si rogaveris Deum),' 혹은 '주여 깨끗하게 하소서(domine, munda)'가 아닌 예수님 자신의 신적인 의지를 존중하고 신적인 권능을 고백하는 참으로 지혜로운 일거양득 혹은 '일타쌍피' 어법을 관찰하고 격찬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산상에서 율법의 본래적인 의미와 사랑과 신실함을 가르치고 하산하신 이후에 벌어졌다. 산에서는 입술로 교훈을 전하셨고 아래로 오셔서는 행위로 교훈을 실천해 보이셨다. 예수님의 교훈은 삶과 동일했다. 이는 주님께서 선보이신 교육학의 시청각적 극대화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을 만지셨다. 이는 부정한 사람을 만지지 말라는 율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행위는 때때로 율법 폐기론의 범례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자신의 주장을 성경에 강요하길 좋아하는 무리들의 습관성 문법일 뿐이다. 예수님은 깨끗해진 그에게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제사장의 확인을 받으라고 하셨다. 율법 폐기자가 아니라 완성자의 모습이다. 여기서 문둥병의 부정함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부정함의 상징이며 제사장의 확인을 명하신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율법의 진정한 의미이고 본질적인 실체이며 궁극적인 완성임을 보이기 위함이다.

이 대목에서 황금의 입술은 우리가 하나님의 덕에 이르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실질적인 장애물은 육신의 문둥병이 아니라 '영혼의 문둥병(animae lepram)'이 문제의 원흉이라 하였다. 이렇게 본다면, 부정한 자를 만지신 예수님은 율법의 문자(litteram legis)를 범하기는 하셨으나 본래의 취지(propositum)를 범하지는 않으셨다. 문둥병은 '단순히 육체적 고통이나 흉한 모습으로 인해 겪는 슬픔'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부정함 때문에 이스라엘 진 밖으로 쫓겨나야 하는 영적인 죄문제를 상징한다.

의지나 말씀만이 아니라 굳이 손의 접촉으로 질병을 치료하신 것은 예수님이 율법의 고의적인 폐기자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입안자요 해석자요 완성자요 심판자가 되신다는 사실의 선포이며 확증이다. 바울의 지적처럼 율법은 범법 때문에 '더하여진 것'이다. 당연히 율법은 의술이나 윤리나 처세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인 범죄와 직접 관계한다. 문둥병 조항도 예외일 수 없으며, 당연히 문둥병의 치료는 죄문제의 해결과 유비적인 연관성을 갖는다고 이해함이 합당하다.

'예수님이 의지만 하신다면 무엇이든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문둥병자 입술에서 나온 고백과 청원의 탁월함이 번뜩이는 대목은 바로 여기이다. 죄를 사하시는 권세의 주체요 죄사함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신 응답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예수님의 행적은 분리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지극히 사소하게 보이는 행위나 언행이나 거동도 율법 해석의 단초이다. 과연 모세의 기록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예수님은 율법의 해석이라 함이 정당하다.

오늘은 복음서가 무더위의 급습을 황급히 따돌리는 듯한 매력을 보란듯이 발산한다. 최소한 주님께 다가가는, 마음에 쏘옥 드는 근사한 기도문 한 소절은 건졌다. "주께서 원하시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무슨 신앙고백 같은 평서문에 불과해 보이는데 나에게는 너무도 매력적인 기도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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