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7일 월요일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주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이 고백은 한 마디도 가감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해의 차원에서 왜곡이 가해지기 쉬운 말씀이다. 무엇을 하든 성취 가능성의 여부를 자신의 능력에 두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외부에서 동원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도 필요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필요는 대체로 하나님의 속성과 뜻에 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소불위 에너지와 관계한다. 이런 인간적인 이해의 바탕에서 해석학적 왜곡이 빚어진다.

등대와 등잔과 관을 환상으로 보고 그 의미에 대한 스가랴의 물음에 하나님은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된다'고 해석해 주시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서의 '신'을 여호와의 능과 힘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다시 에너지다. 이와 유사한 어떤 말씀들을 읽더라도 하나님이 나의 일을 성취하는 에너지 공급자란 관념이 해석학의 아랫묵을 차지한다. 못된 버릇이다. 스가랴서 말씀에서 '여호와의 신'은 힘과 능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과 길과 빛과 영광과 위엄을 의미한다.

바울의 고백은 비천과 풍부와 주림이란 환경에서 터득한 일체의 비결을 소개하는 문맥에서 등장한다. 이는 주님께서 뜻하시지 않는 것은 어떠한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대체로 주님께서 에너지만 공급하면 내가 원하던 것을 실컷 이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왜곡된 이해에서 기도는 기복적 성향을 옷입는다. 정성을 드리고 신명을 바쳐 주님께 간곡한 호소문을 올리고 누구도 당해내지 못할 권능의 주먹으로 깔끔하게 성취해 주시라고 간청한다. 여기에는 기능주의 사고의 끈적한 출입도 감지된다.

의미의 무게는 "그리스도 안"이라는 문구에 실린다. 말씀이신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다른 언급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하고 살고 기동한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존재도 삶도 기동도 없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의 총체적인 뜻이다. 하나님의 뜻 밖에서는 살았으나 죽음과 일반이다. 그런 분 안에서만 모든 것이 성취된다. 하나님의 뜻만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의 편 팔은 굽힐 자가 없고 경영하신 즉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건 빈부나 귀천이나 배고픔이 좌우하지 못한다.

바울이 배운 일체의 비결은 이것이다. 나도 그 비결이 목마르다.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경험적 고백을 토해내는 날이 이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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