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6일 목요일

걸음의 인도자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16:9)

한 사람의 인생 설계도를 작성하는 마음의 경영은 그 사람에게 있지만 그것이 구현되는 현실적인 걸음과 결과는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다. 때때로 머리의 상식과 삶의 현실 사이의 괴리와 불협화음 때문에 곤혹스런 경우가 있다. 실제로 최상의 학구열을 불태우고 땀방울이 소나기에 가깝도록 이마를 적셨어도 돌아오는 결과가 합리적인 기대를 배신하는 경우가 종종 우리를 낭패의 웅덩이에 빠뜨린다. 

예상하지 못한 원인과 결과의 불일치에 부딪히면 푸념처럼 운명의 장난을 탓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심연에는 하나님을 향한 무의식적 원망과 분노가 발동한다. 이런 태도는 비록 어떤 특정한 사안의 실패를 계기로 촉발되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와 유사한 실패들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인생의 예측불허 현실과 내 인생을 내가 마음대로 좌우하지 못한다는 주도권 상실감이 하나님을 노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배후에는 하나님과 비기려는 근성이 흉칙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다.

우리가 내일의 일을 자랑하지 못하는 것도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착하고 성실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급작스런 불행과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의 수효를 헤아리기 어렵다. 아이들을 태우고 등교길에 오를 때면 도로변에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살아가던 짐승들의 사체들이 허무하게 널부러져 있다. 인생과 짐승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하였던 전도자의 예리한 관찰은 동서고금 전체를 관통하는 실재이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의 병행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인생에 흐림과 맑음이란 기후의 변덕이 있음은 인생으로 하여금 장래의 일을 능히 헤아리지 못하게 하심이 목적이고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폈다는 전도자도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행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으며 사람이 아무리 궁구의 땀을 흘려도 능히 깨닫지 못하며 내노라 하는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를 못한다고 했다.

인생이 마음의 경영대로 풀어지지 않는다고 원망과 분노의 이빨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그의 나라를 훼방하는 행태는 올바르지 않다. 오히려 인생의 걸음 인도자가 주님이고 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겸손의 무릎을 꿇고 여호와를 더욱 깊이 경외하는 것이 올바른 지식의 시작이고 건강한 지혜의 본질이라 하겠다. 비록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번뜩이는 형통의 대로가 뻥뻥 뚫어지지 않더라도 경외의 깊이를 다지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디펜스를 통과한 날, 동녁에 걸린 쌍무지개 때문에 사실 언약의 묘한 감흥에 잠시 휩싸였다. 그러나 그걸 인간적인 형통의 주술적인 싸인으로 해석하진 않았다. 그냥 격려의 스마일링 페이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표정의 실상은 앞으로 서서히 확인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실상이 사랑하는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의 백성된 나의 형제들와 자매들을 사랑과 겸손으로 섬기는 것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지극히 작고 연약한 자를 지금까지 이끄신 주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미시건 특유의 청아한 하늘이 유난히도 상큼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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