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2일 수요일

거짓된 인간과 참되신 하나님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롬3:4)

만물과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이 담긴 말씀이다.
하나님만 참되시고 모든 사람들은 거짓되다. 간단하고 명료하다.
하나님의 참되심은 말씀의 영원한 불변성과 관계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동일하다.

그러나 사람은 말씀의 속성과는 정반대로 항구적인 변화의 대명사다.
문제는 변화 자체보다 영원토록 참된 말씀에서 멀어지는 것에 있다.
거짓의 정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이탈의 정도로 가늠된다.
끔찍한 엇각 발생의 출처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태초이다.

그런데 거짓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이 허위자의 첩경이라 하였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는 신탁도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자였다.
신약 시대에는 귀에 달콤한 말씀만 선별하는 유형의 거짓이 왕성했다.

교부들의 시대에는 성경의 물리적인 문자 가감으로 거짓을 저질렀다.
중세의 로마 카톨릭은 성경의 각권을 임의로 추가하는 거짓에 대범했다.
거기에 번역이나 해석학적 면에서도 거짓과의 결탁은 상식으로 통하였다.
때로는 반듯한 이론을 전면에 깔았으나 실천에 있어서는 거짓을 자행했다.

지금은 역사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던 전력이 있는 온갖 종류의 거짓들이
박람회 수준으로 한꺼번에 자유롭게 각자의 진을 구축하며 공존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전적인 타락이 새로운 유형의 거짓을 더 이상 빚어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정도로 분별과 선택만 남은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본문은 로마서의 문제설정 및 초반의 논지를 주도하는 핵심 문구가 아니다.
하지만 비록 지나가듯 언급되긴 했으나 논지의 밑둥을 떠받히는 전제이다.
역사의 지면에서 참되신 하나님과 거짓된 인간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무시되면 로마서의 중심 메시지가 무너지고 마는 그런 전제 말이다.

자신을 부인하면 부인하는 그 만큼 모든 인간의 총체적 거짓과는 멀어지고
참되신 주님과의 거리는 좁혀진다. 자기부인 명령의 목적은 착취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건의 핵심도 이익의 방편으로 동원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거짓의 탈피와 진리의 취득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에 있음은 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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