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일 목요일

믿음을 보겠느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이 구절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포기할 줄 모르는 과부의 호소 이야기로 강조하고 반전 접속사 '그러나'를 던지신 이후에 내리신 상당히 단절적인 인상을 풍기는 이야기의 결론이다. 동문서답 어법의 달인이신 예수님의 의중이 궁금했다. 김성수 교수님의 풀이가 압권이다. 교수님은 먼저 과부가 호소하는 내용을 주목한다. 헬라어 동사 'ἐκδικήσω'는 '원통함과 억울함을 푸는 것'이라는 개념에 착안하여 과부의 호소는 민생고 해결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신원하여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이야기의 핵심은 '성도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이 험하고 어렵고 힘들다는 것과 이러한 경우 신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뢰와 믿음'을 교훈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인자가 올 때'라는 것은 '믿음과 사랑이 점점 식어가는 때일 것을 가리키는 말씀'이요 또한 주의 재림이 가까운 때일수록 세상은 더욱 악하고 부패할 것을 미리 알리시는 말씀이다. 마지막 때가 임박하면 세상은 더욱 악하고 부패할 것이고, 우리의 눈길이 어디에 머물든지 그곳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나라와 약속에 대한 기대가 식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함을 지적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김성수 교수님은 '세상이 너무 악하여서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듯하여도, 악한 세상 가운데서 천지간에 홀로 서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마치 고아나 과부와 같은 억울한 처지에 있다는 생각에 젖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지 않고 완성을 향하여 전진할 것이므로 신자는 여전히 자비롭고 의로우신 재판장의 긍휼과 은혜와 도우심을 하나님께 기대하고 간구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온 세상이 사방에서 종말의 끝자락 장면을 연출하는 듯하여도 화들짝 놀라거나 기이한 일 벌어진 것처럼 떠들석할 필요 없다. 공법이 인진으로 변하고 불법이 합법으로 둔갑하고 반듯한 제도의 옷을 입고 공공연한 거리를 활보한다 할지라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종말론적 낭패감에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물론 종말은 성경의 핵심적인 교훈이며 성도의 믿음에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는 진리이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 및 종교개혁 시대에 횡행하던 경악과 공포의 사건들에 비한다면, 지금은 종말론의 '종'자도 언급하기 곤란한 평화의 시대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며 오늘날의 혼탁한 시대상에 구린내 나는 숟가락을 얹어 무너진 리더십을 관리하고 어떤 모양이든 한 몫 챙기려는 시한부 종말론이 심지어 멀쩡한 기성교회 강단에서 예의 그 역겨운 고개를 내밀도록 멍석을 깔아서는 안되겠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보고자 하시는 믿음을 예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는 나를 안심시킬 증거가 도무지 감지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오직 하나님 자신에만 근거한 하나님 신앙을 주님은 보시기를 원하신다.

그런 신앙은 항상 낙망하지 않는 기도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