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7일 월요일

개인의 권능과 경건이라...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행3:12)

날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분의 존재감이 그곳을 무시로 출입하던 베드로와 요한의 시선을 붙들었다. 평소에는 눈에 걸리지도 않았던 사람인데 관심이 이끌린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사도들의 시선과 초점도 성령의 주도적인 이끌림을 받았기 때문임에 분명하다. 베드로는 대범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였다. 그러자 태어나서 걸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의 발과 발목에 힘이 올랐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했다.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운 기적이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희귀한 기적을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고" 급기야 사태의 전모가 궁금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솔로몬 행각에서 만나 그들을 붙들었다. 단순히 감사의 마음 표하는 정도를 넘어 과도하게 붙잡고 매달렸다. 기적의 주역들을 목격한 군중들은 곧장 그 행각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들은 기적의 원인으로 사도들의 개인적인 권능과 경건을 주목했고 하나님의 은혜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 이에 베드로는 신구약을 관통하는 복음의 정수를 쏟아내며 군중의 인간적인 숭앙심을 단호히 배격했다.

사도들은 교회의 기둥을 세우고 터를 닦았으니 어깨에 권위의 힘이 적당히 들어가도 그리 문제될 게 없는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 중에 수장격인 베드로의 반응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적지가 아니하다. 설교에 대박을 터뜨리고, 일상에서 감동 한 토막을 구현하고, 절박한 분들에게 기적이 일어나고, 신비롭고 희귀한 일들이 발생하면 뭐라도 하나 건지려고 어떻게든 수익의 극대화에 매달리고 개인의 영력을 광고하는 법인데 사도들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건지고 챙길 명예와 수입이 완벽히 보증되는 상황조차 격하게 뿌리쳤다.

하나님 한 분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신앙을 사도들은 손아귀에 굴러 들어온 성공과 인기에도 은밀히 영합하지 않고 전인격과 전 생애에서 겸손의 구체적인 범례를 선보였다. 목회적인 성공이나 학문적인 성취나 작가적인 유명세로 자신의 개인적인 경건과 권능이 주목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목회자는 옷을 찢어 성정의 동일함을 보이고 재를 뒤집어 쓰면서 늘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이며 회개의 자리가 마땅한 자라는 사도들의 겸손을 본받아야 하겠다. 그런 절호의 상황은 제대로 활용해야 되겠다는 세속적인 판단은 접으시라.

사람의 영광을 구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훔친 사과처럼 갑절로 달콤해도 나중에는 모래가 입에 가득하게 된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것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할 일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하루하루 두렵고 떨린다. 아무리 존재감이 밑바닥을 맴돌아도 사람의 영광에 헐떡이는 본성의 작용은 누구나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 갈취는 존재감의 정도와 무관하다. 하나님의 영광 갈취는 지금 성공과 인기의 상석을 차지하고 계신 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잘 다스리고 잘 가르치는 분들에 대한 갑절의 존경도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기적은 하나님의 일이었고 은혜였다. 펙트의 문제다. 여기에 궁색한 숟가락을 얹어서야 되겠는가. 어떠한 상황이든 겸손이 상책이다...그게 개인의 진정한 권능과 경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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