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0일 월요일

인간의 길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이해할 수 있으랴 (잠20:24)

이는 사람이 자기의 인생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인류의 행보가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유는 사람의 행보가 여호와께 속하였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만사가 오묘한 것과 나타난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후자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영구히 속했다고 밝힌다. '오묘한 것'은 왜 가리워 두었냐며 불공평한 정보공유 실태에 거북한 심기를 드러내며 하나님께 까칠한 불평의 날을 세우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람들은 부지불식 중에 긴 세월동안 선악의 독자적인 분별로 '오묘한' 영역 좁히기의 막대한 성과를 거두었고 고도로 발전된 문명은 그 결과였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은 인간적인 면에서의 발전일 뿐이었고 그 성격은 보고 듣는 기능의 확대와 연장에 불과했다.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DNA의 속살에 정밀한 성형을 가한다 할지라도 그런 본질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사람의 조작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형평성의 개념이 과장되어 능력과 판단과 영광과 존귀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보다 비교할 수 없도록 탁월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세태가 비록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통제력을 상실한 위태로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세상에는 주님께서 정하신 질서의 지계표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임의로 수정하는 방식으로 신과의 '동등성'을 구가하려 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별을 결정하는 기술이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오자 인간의 고유한 질서마저 허무는 문명사적 역주행도 불사한다.

나중에 인간의 도덕성 인자를 식별하고 이식하는 기술이 학술계를 강타하고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계까지 이르면 창조자 하나님과 비기려는 인간개조 시도들이 신문명의 대명사인 듯 사방에서 뻣뻣한 무쓰를 바르고 민망한 고개를 내밀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광기는 사람이 자기의 길을 능히 알 수 없어서 필경은 사망의 길로 이어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각자의 길을 무모하게 질주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독자적인 행보는 어쩌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길과 슬픈 평행선을 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간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시다. 주님만이 우리에게 길이시다. 사람의 길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만이 인간에게 길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그 길을 이탈하면 모든 것들이 마비된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은 주님의 협박성 인기 관리용 멘트가 아니다. 인간의 본질을 지적하고 삶의 핵심을 교훈하고 삶의 구체적인 행보가 하나님께 속했음을 계시하신 말씀이다. 진실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길을 계시하지 않으시면 능히 그 길을 알 사람이 없다.

사랑하는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길이 되신다는 말씀이 심히 달콤한 아침이다. 인간이 능히 알지 못하여서 스스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생명과 진리시며 인생의 길 되심을 보이신 주님께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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