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8일 수요일

아름다운 근심의 중첩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빌2:28)

1. 에바브로디도는 주님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사람이다. 이는 바울을 섬기는 빌립보 교회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었다. 그런 그가 병들어 죽게 될 지경까지 갔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근심하게 되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교회가 근심에 빠지게 되었음을 알고 그것이 미안하고 안타까워 극심한 근심에 빠진다. 이런 교회의 근심과 동역자의 근심이 서로 원인이 되어 근심이 더해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바울의 마음은 갑절의 근심에 빠져든다.

2. 드디어 주님의 은혜로 에바브로디도의 질병이 고쳐졌고 바울의 근심은 사라졌다. 그러나 동역자의 치유를 몰라 여전히 근심하는 빌립보 성도들의 근심이 바울의 목에 걸렸다. 그래서 동역자를 교회에 보내기로 결심하고 서신을 띄운다. 그를 만나면 성도들의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이고 성도들의 근심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바울도 기뻐하게 된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그를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되 그를 존귀히 여김으로 그리하라 부탁한다.

3.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은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와 빌립보 교회 사이에서 벌어지는 숨막히는 사랑의 교차는 사랑의 끈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응하는 기막힌 사례겠다. 근심에 근심이 중첩되는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바울의 서신에 담기고 교회마다 회람되어 온 교회의 귀를 달콤하게 하였고 마음을 흐뭇하고 하였고 공동체는 더욱 결속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정의 대립각을 세우던 사람들도 평안의 매는 줄로 인한 하나됨에 끼어들고 증오의 칼을 부셔뜨러 수고의 보습을 만들고 시기의 창을 쳐서 섬김의 낫을 만드는 결과가 뒤따랐을 것이다.

4. 나로 인하여 상대방이 근심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향기롭다. 나로 인한 타인의 근심에 서로 민감하면 생기가 감돌고 사랑이 공동체의 혈류를 관통한다. 이는 환경의 변화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타인 의존적인 신경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이 형성하는 근심에 빠지라는 이야기다. 적극적인 사랑을 못한다면 최소한 타인에게 근심을 제공하는 것을 경계하고 살피는 사랑의 소극적인 하한선 이하로는 추락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근심'이란 단어는 사랑의 다른 표기이다. 이러한 사랑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히는 공동체가 그립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준엄한 목소리로 호령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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