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4일 일요일

Bavinck의 보편성 논의 1


우리는 창조의 장엄함과 함께 시작되는 모세오경이 우주와 인류 전체의 범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작고 보잘 없는 백성과 그들의 거룩과 경배에 대한 하찮은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며 결론 짓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이토록 웅대한 시작과 초첨이 좁은 결론 사이에는 부정할 없는 불균형이 있어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율법이 기초한 토대는 참으로 광범위한 것이다이와 같이 광대한 서곡은 우리로 뭔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육일동안 지으시고, 제칠일을 거룩하게 구별하며 인간을 축복한다. 축복은 노아의 홍수에서 건짐을 받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 갱신된다사실 하나님은 자연 전체와 연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시점부터 하나님이 그의 축복을 내리시는 범위가 점차 작아진다: , 아브람, 이삭, 야곱.

결국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기 위해 선택하신 것은 하나의 빈약하고 초라한 백성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민족들은 각기 길로 가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이 의존하고 있는 넓은 토대는 우리에게 선택이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하나님의 계시는 열방을 궁극적인 범위 안에 포함하고 있다. 계시가 이스라엘 자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 경배(하나님을 섬김) 사이의 분리는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이분법은 하나님의 신정적인 규칙의 통일성 안에서 사라진다. 여호와의 법이 모든 것을, 지극히 사소한 것까지도, 규정한다. 제사장 뿐만 아니라 왕들도; 예전과 도덕적인 것뿐만 아니라 삶의 시민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들도 하나님의 법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여기서 우리는 전인을 삶의 총체 속에 포함하는 종교의 내적 보편성과 조우한다.

이런 방식에서, 이스라엘의 신정주의는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자체 안에 포함하고 있는 다가올 하나님 왕국의 '부차적인 '이다.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가 민족적인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신비를 벗겨준다. 이로써 우주적인 알맹이가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껍데기를 벗은 것이다. 여기에서, 종교와 백성, 은혜언약과 열방, 교회와 국가, 성도와 시민이 서로 연결된다. 교회의 분리는 나라와 민족을 떠남으로 가능한 것일 뿐이다. 미래에 모든 열방은 아브라함의 씨에 의해서 복을 받을 것이다. 날은 주의 종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빛이 열방 위에, 주의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게 것이다.

예언은 때가 차매 이루어 졌다. 우리는 다시 교회가 세워진 토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초한 토대만큼 광범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우주를 이처럼 사랑하사 만물이 그로 말미암은 독생자를 보내셨다. 사실, '세상'이란 단어는 신약에서 다소 거슬리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왕국에 대립되는 죄의 수단으로 창조된 모든 실체들의 유기적인 통일체를 가리키는 것일 있다. '세상' 사악함 중에 있으며 (요한일서5:19)  세대의 신으로서 (고린도후서4:4) 마귀가 그것의 왕이다 (요한복음14:30; 16:11). 세상은 하나님도 모르고 그의 자녀들도 알지 못한다 (요한복음17:25; 요한일서3:1). 진실로 그것은 예수님을 싫어하는 것처럼 그를 따르는 자들도 싫어한다 (요한복음15:18, 19; 17:14). 이런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과 욕망들을 저항하고 극복해야 한다 (요한일서2:15-17; 5:4). 예수님과 그를 따른 제자들이 세상의 어리석고 연약한 자로, 세리들과 죄인들로 묘사된 것은 부정할 없다. 소유물의 풍족함 속에서와 이생의 삶은 염려로 가득한 삶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들 속에서 발견되는 유혹을 경계하기 위한 그들의 반복적인 권고들 안에 반영된 진실한 경외심이 있다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다; 중심에는 고통의 신비가 있다. 세상의 이러한 단일한 개념은 기독교와 고전적인 세계관 사이에 얼마나 넓은 간격이 존재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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