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바빙크의 De gemeene gratie 2


사도들의 가르침이 이방 민족에게 복음으로 알려졌을 그들에게 전적으로 새로운 사유의 세계가 등장했다 새로운 철학은 그리스 철학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철학의 욕망은 생소하고 신기한 내용과 함께 기독교를 정복하기 시작했고기독교를 철학적 바탕에서 인식하려 했다. 2세기의 영지주의 사상은 기독교를 거대한 세상과정(wereldproces) 속에 집어 넣고 모든 종교와 철학을 포괄하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녹이려고한 오만한 시도였다그러나 각성이 뒤따랐다거만한 사색 속에서 은혜의 복음은 실종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음을 영적 인식의 반열에 올리려는 노력에서 그들의 사색적 영향력을 제한하고이성의 빛(lumen naturalis)으로 삼위일체성육신구속의 교리들을 증명 또는 명확히 하려고 하였다이러한 시도는 중세까지 길게 이어졌다그러는 동안에 사색은 점점 이러한 교리들이 사유의 한계를 넘어가는 이해 불가능한 신비라는 결론으로 이끌려 갔다이성은 감각적인 것을 뛰어넘는 일에 일말의 성취를 보이며최소한 증명될수 있다고 여겨지는 하나님의 존재나 영혼의 불멸성 같은 초자연의  토막을 파악할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이성은 자신의 한계를 발견했다믿음과 이성에 의해서 알려지는 (articuli mixti) 있는 반면믿음에 의해서만 알려질  있는 (articuli puri) 있다는 구분과 자연적 종교와 계시적 종교 사이의 구분이 그것이다이러한 구분들은 아레니우스터툴리안어거스틴그리고 다마스커스의 요한 같은 교부들 안에서 이미 나타났다그들의 생각에는믿음의 사람은 자연과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로 알려질  하나님의 손을 분별할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교부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사실인가아주  프로젝트다교부를  뒤집어 털어서 연구해야 한다는 말인데지금은 때가 아니다나중으로 마루자.] 문제는 로마 카톨릭의 스콜라주의다종교개혁 전후로 풍미했던  스콜라주의가 교부들이 가진 구분의 개념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로마는 죄와 은혜의 대립적 관계를 자연과 초자연의 대립으로 교체해 버렸다는 주장이다로마는 후자의 대립과 관련하여 기독교의 사도적 원리들과 충돌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반은총 교리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지금 바빙크가 두번째로 의도하는 목적은 바로 로마 카톨릭의 그릇된 이분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을 극복한 종교개혁 정신의 탁월함을 일반은총 개념과 연관지어 지적한  그것이 오늘날도 버리거나 간과되지 말아야  너무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수순으로 글을 전개시켜 나갈 것이다.]

로마의 견해에 따른다면하나님의 마음 속에는  종류의 인간과  종류의 법과  종류의 사랑과  종류의 운명 또는 목적이 있다하나님은 먼저 인간을 수순한 자연적 상태에서 육적이고 감각적이고이성적이고도덕적인 존재를 만드셨다여기에 하나님은 거룩한 이미지(gelijkenis)  덧붙여진 은사(donum superadditum) 추가했다그러나 이것은 죄로 인하여 곧장 상실한다원죄는 이처럼 완전한거의 완전한 ‘덧붙여진 은사’의 상실과 자연의 상태 속으로의 전환으로 구성되어 있다그의 사회적 환경의 위험한 영향력을 별도로 한다면인간은 타락  아담과동일한 조건에서 태어나되, ‘덧붙여진 은사’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사실 욕심도  자체로는 죄가 아니다욕망이 이성의 주도권을 벗어날  죄가 되는 것이다.

 자연적 인간은 참되고 선하고 온전한 인간이다그러므로 그는 선하고 순수한 종교  자연적 종교(religio naturalis) 소유할  있다고 한다또한 그는 선하고 온전한 윤리를 가질  있으며 순적한 덕들도 수행할  있다고 한다그는 죄와 무관하게 육적인 삶을 영위할  있으며 자신을 예술과 과학과 사업과 산업에 투신할  있으며 그의 가정적사회적정치적 책임도 충실하게 완수할  있다는 말이다우리는 자연의 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완전한 인간주어진 한계 안에서 그의 이상적인 본질에 완전히 도달할  있는 그런 인간이다물론 로마가 그런 인간이 종교 없이도 존재할  있다는 주장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다인간이 종교를 가지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여기서 종교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계시 안에서 이루어진또한모든 안간에게 내재된 힘에 의해서 실행되는자연적 종교를 의미한다자연적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주종관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즉각적인 임재 안에서 천상적인 복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실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무흠하고 자연적이고 지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죄의 영향력과 모범의 힘이 너무 강하다관념적인 면에서 이상이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만약 어떤 사람이 그런 고결한 자연적 삶을 이루고 그의 자연 종교적 책임을 다했다면세례 받지 않고 죽은 아이들에 대한 것처럼그에게도 어떤 타당한 형벌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다만 정죄된 자들의 형벌 초자연적 축복인 최고선에 이르지 못하는 형벌은 있다.

카톨리 입장에서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지정하신 두번째 보다 높은 이상과 목표가 있다고린도전서 2 6-16 주석에 따르면엄밀하고 절대적인 관점에서 초자연적인 것들 사이에는  하나의 질서(eene orde) 있다는 것이다이것들은 타락한 인간의 지성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무흠한 자연인의 지성도 초월한다진실로그것들은 천사들의 지식도 능가하며초자연적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지는 것이라고 한다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적인 자유 안에서 인간을 이런 초자연적 질서 속에 두시기를 정하셨다그는 그를 자연에 기초한 하나님의 자연적 지식뿐만 아니라 계시에 기초한 지식의 수준까지 인간을 끌어 올리기를 워하셨다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지상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천상의 초자연적 축복도 예비해 두셨다인간을 종의 신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이었다하나님의 아들이란 목표를 위해 다른 보다 고급한 은사가 필요하다왜냐하면 인간의 자연적 은사들은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자연적 은사들에 추가하여사람은 성령과 초자연적 은사의 내주가 필요하다타락 이전에는 이것이 인간에게 ‘덧붙여진 은사’ 안에서 주어졌다그러나 타락 이후에는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한 것이 되었다첫째우연적인 필요성는 그것이 타락으로 다소 약화된 인간의 자연적 은사들을 보조하는 것이다둘째절대적인 필요성은 인간이 초자연적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땅에서의  초자연적 은총의 보존과 분배는 교회에 위탁된 것이다사제와 성례식 수행을 통하여 교회는 초자연적 은총이 인간에게 주입되게 만들고 이로써 사랑의 초자연적 원천에서 흘러 나오는 선행을 실천할  있게 된다 선행은 그로 하여금 ‘타당한 공로(meritum ex condigno)’의 원리를 따라 축복에 합당한 존재가 되게 만든다.

자연적 질서와 초자연적 질서의 병립은 로마가  종류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고 기독교를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종교로 만들고 있다는 주목할 현상을  설명해 준다우리가 로마에 의해 자연적 질서 위에 세워진 초자연적 질서를 떠나 생각해 본다면순수한 합리주의순전한 펠라기우스주의그리고 원형 그대로의 이신론이 발견될 것이다사실 카톨릭 시스템의 뿌리는 펠리기우스주의에 있다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수도 있고 창조하지 않으실 수도 있는 자유를 가지셨다그는 세상은 하나의 방법 또는 다른 방법으로 만드실 수도 있으셨다그의 기뻐하는 뜻을 따라 하나님은 인간의 그의 존재에 대한 초자연적 지식 없이도 창조하실  있으셨다그의 뜻은 [플라톤의생각으로 제한되지 않으신다.

따라서 선과 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많은 등급과 단계가 있음을 발견한다계급적 순서와 배열은 카톨릭 시스템의 핵심적인 원리를 구성한다천사들 중에도 계급이 있으며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도 그런 계급이있으며도덕적인 삶과 교회 안에서와 무덤의 다른 측면 안식처(receptacula) 안에서도 계급이 있다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최고의 계급은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린도전서 2 14절의 자연적인 인간은 카톨릭에 따르면 죄악된 인간이 아니라 ‘덧붙여진 은사’가 없는 인간을 뜻한다 인간은 그의 은사들을 사용하여 그의 자연적인 목표를 성취할  있다고 카톨릭은 주장한다여기에 카톨릭이 이교도에 대하여 공언한 완화된 판단이 나타난다 원리에서 기독교 세계의 맹목적인 신앙의 가르침과 도덕에 있어서의 특권과 결의법의 산출 등이 발생했다모든 사람들이 동인한 발판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도덕적 종교적 이상은 개인의 능력과 수용력에 적응될  있다또한  원리는 카톨릭 지성들이 (세기의 합리론적이신론적 신학을 향하여 품었던 연민을  설명해 준다 신학은  자체 안에서 완전히 참되고 좋은 것으로 간주될  있다다만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며 보충될 필요가 있을 뿐이다카톨릭 변증가가 초자연적 서열의 구조를 세우기 위해 추구하는 것이 바로  ‘합리주의적 토대(rationalistischen grondslag)이다로마 카톨릭교의학은  자체를 이런 도식을 따라 구성했다자연신학은 신앙의 서곡이다 다음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동기(motive credibilitats) 뒤따른다초자연적 신학은 그것들(자연신학과 신앙동기위에 높이 올라간다.

그러나 카톨릭은  다른 종류의 자식들을 기르고 있다자연적인 것에 만족하지 않는 이상적인신비적인 사람들보다 높고 고결한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하여 도달할  있도록 만드신 초자연적 삶의 목표까지 이르려 한다이러한 목표에 도달하는 것과 관련하여자연적인 삶은 무익한 장애물에 불과하다 자체로는 죄악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해가 된다. [ 목표의완성은  가지 권고의 방식 빈곤과 순종과 자비에 의해서 가장 확실하고 탁월하게 성취된다수도원 제도의 근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아직도 미지로 남아 있다그러나  운동의 정신은 로마 카톨릭의  시스템을 관통하게 되었다초자연적인 것은  자체로 하나의 질서이며 자연적인 삶을 끊고 그것 위에 높아져야하는 것이다초자연적 질서 안에서 섬기고자 하는 사람은 가능한  자연적인 질서를 죽여야만 한다수도자는 최고의 종교인을 뜻한다그들은 유일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지극히 높은 이상이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영역에서 초자연적 영역으로 이전된 모든 것들은 먼저 거룩하게 된다십자가의 성호와 성수와 성사와 축사와 서품은  영역 간의 혼잡을 벗어나고 초자연적인 것을  구별과 깨끗함 속에 보존하는 여러 수단이다개인들 뿐만 아니라 교회와 제단과 종과 초와 잔과 의복 등과 같은 무생물적 대상들도 불경한 것들에서 구별되고 신성한 영역으로 옮겨진다 영역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은 보다 높은 질서에 속한 것들이며초자연적 목적을 위해  사람을 준비하는 것들이다우리는 교회에 의해서 수여되는 이러한 수단들의 도움특별히 ‘주입된 은총(gratia infusa) 힘입어  최상의 목적을 향해 자신을 준비시킬  있다 목적은 지성적인 또는 신비적인 강조와 함께 추구될  있다스콜라주의와 신비주의는  줄기의 여러 가지들일 뿐이다그것들은 실제로 서로에게 대립되지 않는다반대로 그것들은 서로를 상호 지원하며동일한 원리에 기초한 것이며주로 병행한다모두  근원과 성격과 목적은 카톨릭에 뿌리를 두고 있다카톨릭적 경건은 신령한 것에 대한좁게는 종교적인 것에 대한 명상과 숙고에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전인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헌신의 맞은편에 자연적인 삶의 부정이 있다.

카톨릭의 이러한 특성들은 명백하다한편으로지상적인 것의 부정과 그들로 존경과 찬미로 가득 채우는 천상적인 것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 있다카톨릭은 최고의 서열을 가진 성인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기독교 도덕에 있어서는 균열을 조장하는 연약한 인간 본성의 탐닉이 있다카톨릭의 주도권이 중세시대 만큼 감히 대항할 자가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때는 없었다로마는  날개를 펼쳐 모든 것을 뒤덮었다그러나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인 것은 아니었다기독교의 형태 밑바닥에 세상과 그것에 대한 욕망에 대하여 전혀 낯설지 않는 권력 추구적인 자연적 삶이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요일2:17).  자연적인 삶은 은밀히 강요되고 있었으나 새롭게 되거나 거룩하게 되지 않았다그것이 로마의 계급구조에 반기를 드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시점이 중세의 말기까지 점차 다가온 것이다모든 곳에서 영적 교란의 상태와 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그것은 모든 종류의 불신과 조롱세속성과 불경함그리고 르네상스 인문주의 속에서 표출되고 말았다로마는  근원적인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믿음과 이성교회와 국가자연과 은총은 서로 타협할  없는 팽팽한 대립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자연적 인간은 목에서 로마의 멍에를 내던졌다. [카톨릭의 문제가 여기서 정리되고 있다바빙크의 견해가 탁월하다그러나 이것을 카톨릭의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로 곧장 끌고 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기독교의 모든 모순과 애매함과 이해 불가능한 것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신비한 연합에서 비롯된 것이라던 루터의 지적이 여기에 이어져야   같다카톨릭 신학의 실천적인 측면은 그리스도 예수를 모든 것의 중심으로 여기지 않는다신성과 인성의 신비한 연합의 비밀을 땅의 것으로 대체하고 인위적인 체계로 교체하려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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