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5일 일요일

바울의 과격한 언사가 궁금하다

만일 누구든지 주 예수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대체로 과격하고 직설적인 언사를 구사한다.
심지어 사랑을 논하는 고전 13장에서도 
예언과 지식과 믿음의 고유한 가치에 금이 갈 정도로 
가볍게 상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제끼고
사랑의 압도적인 우선성과 우월성 강조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르쳤던 진리의 복음과 다른 걸 전하거나
더하거나 빼는 경우에는 사도들은 물론이고 천사라도 
저주의 명단 아랫묵을 차지하게 될 것이란다.
이게 다 그의 격정적인 회심과 삶의 스타일에 
걸맞은 필치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겠으나 
뭔가 다른 사연이 있어 보인다. 그게 궁금하다.

바울의 언사는 
동시에 애매함과 복잡함이 없이 단순하고 명료하다.
아기자기 아리까리 군더더기 수식어가 없다.
물론 우리의 어그러진 죄성 탓에 모든 게 헛갈린다. 
하여 성령의 조명 없이는 한 마디도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바울의 언사를 이렇게 생각한다.
진리의 차원이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은 격차 때문이다.
예수님의 동문서답 식의 의사소통 사례들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 문맥에서 던져진 물음에 결박되는 방식이 아니라
질문자의 선 자리로 적응하되 그를 진리의 차원까지 끌어올려 
주께서 하시는 말씀를 듣도록 하는 방식의 화법 말이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저주와 동급이다.
기분이 나빠지고 상식이 뒤틀려도 타협은 불가하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의 수혜자가 된다는 사실,
상식과 다수결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기에
우리의 자유와 존엄을 침해하는 듯한 과격성이 느껴진다.
좌우에 날 선 검보다 예리하고 섬뜩하다.

허나 어두움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운 세상의 실상에서 보건대
바울과 같이 지반을 뒤흔드는 화법의 과격성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것을 빌미로 
우리의 혹시 추한 언사를 정당화할 생각일랑 접으시라.
성경의 언어와 우리의 언어를 구분하지 않는 게
자유주의 신학의 세련된 면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함정이다.
우리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선하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올바르고 가장 고상한 언어를 사용함이 마땅하다.
할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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