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 of Antioch)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에 따르면,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AD 35 or 50~ 98과 117년 사이) 주교는 베드로가 안디옥 주교직의 후임자로 지명했고, 예수님이 품에 안으셨던 아이들 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PG 5:980). 그는 자신을 테오도루스(Theodorus)라 불렀으며, 이는 ‘심장에 그리스도 예수를 가진 자(is qui habet Christum in pectore)’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사도적 교부들(Apostolic Fathers)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이그나티우스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순교의 길을 걸어가신 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복음을, 자신의 생명과 동일하게 여기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콜베르티누스 코덱스(Codex Colbertinus)에 담긴 그의 순교 이야기(Martyrium)는, 그 당시 트라야누스 (Trajanus) 황제의 판결을 따라 ‘십자가에 못박힌 자를 지니고 다니는’ 이그나티우스가 병정들의 손에 이끌려 로마로 이송되고 그곳에서 로마인의 유희(delectionem)를 위해 사자밥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PG 5:982). 놀라운 것은, 그가 이 판결에 대하여 감사의 탄성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그는 “당신을 향한 완전한 사랑으로(perfecta charitate) 나를 영화롭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진실로 그는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내 하나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imitatorem passionis Dei mei)’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분입니다. 

이그나티우스가 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가 사도들 이후에 하나의 ‘보편적 교회(catholica Ecclesia)’라는 말을 처음으로 언급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PG 5:714). 시대와 공간을 초원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의 교회로 보았던 거시적 안목을 처음으로 보여준 교부라는 말입니다. 이런 생각에 기초하여 그는 분열(divisions)을 악의 근원(principium malorum)으로 간주하고,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언제나 분열의 문제를 지적하며 적극 피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교가 한 지역교회에 한 명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의 보편성과 하나됨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그나티우스는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도 결코 비겁하고 타협적인 침묵으로 피해간 것이 아닙니다. 그때 이단들은, 예수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전혀 아프시지 않았으며, 부활도 인간 예수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육신 속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임무를 마치고 하늘로 가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이그나티우스는 이단들을 반박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실재성을 강한 어조로 외칩니다. 그는 수난과 부활의 예수님을 하나님이 계시되는 독보적인 좌소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신 예수님의 실재성을 부정하면 사실 기독교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의 순교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실재성을 외치는 마지막 증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이그나티우스가 바울의 서신들(tota epistola)을 알았으며 그것을 복수(plurals)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PG 5:655). 즉 바울의 편지들이 나중에 교회에 의해서 수집되어 성경의 목록에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니라 1세기 교회에서 이미 묶음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말시온이 자기의 입맛대로 성경을 편집하여 교회를 어지럽게 하기 이전의 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로마 카톨릭이 교회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잘못된 주장을 뒤집어 엎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은, 성경이 오늘날의 성경으로 규정된 것은 교회의 권위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교회의 권위는 성경의 권위보다 높습니다.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과 미사를 집례하는 사제들은 평범한 인간일 수 없습니다. 즉 그들은 아무런 흠과 죄가 없다는 또 다른 궤변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여러 교리적인 문제들은 성경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견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개혁 및 후기 종교개혁 시기(16-17세기)의 문헌에는, 성경을 하나의 교리의 차원(locus)이 아니라 교회론을 비롯한 모든 교리들이 산출되는 원리(principium)로서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그나티우스가 이런 문맥의 중심부에 섰던 교부는 아닙니다. 기독교 교리를 논함에 있어서 그는 기록된 성경에 천착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록된 문헌보다 선포되는 복음에 강조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교리들이 성경과 다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선포를 기록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마틴 루터와 칼 바르트의 신학은 마치 이그나티우스의 잠재된 통찰력을 밖으로 꽃피운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이그나티우스가 일찍이 주장한 교회의 보편성은 결코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 교단의 교리적인 차이를 단순히 다양성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진리와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린아이 같은 교리, 성숙하지 못하여 채소를 먹는 것 같은 싱거운 교리적 체계를 갖춘 교회나 교단이라 하더라도 그곳에 모인 분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규정하여 통째로 잘라내는 일은 대단히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로마 카톨릭도 예외가 아닙니다.

뭐 교단이나 교회라는 넓은 범주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까운 주변만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육체에 속한 자처럼 편을 가르고 타인을 비방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성향을 가진 자인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연약한 고아와 과부에게 이웃이 되어 주기보다 나에게 유익과 편이를 제공하는 자들을 이웃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분열을 악의 원리로 보고 거절했던 교부처럼, 우리도 경각심을 가지고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지극히 이기적인 이익의 방편으로 분열을 도모하기보다, 사랑의 띠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온 세상에 그려놓은 넓이만큼 확장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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