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4일 일요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마태복음 1-4장을 읽었다
 마음을 결박한 건 ‘말씀의 성취라는 대목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땅에 오신 모든 일들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며,
요셉이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도
선지자로 말씀하신  “애굽에서  아들을 불렀다 말씀의 성취를 위함이며,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 동네라는 곳에서 살게  것도
우연이 아니라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는 것이라고 마태는 기록한다
나아가 예수님도 세례 주기를 거부하는 요한을 향해
이렇게 하는 것이 기록된 대로 “모든 의를 이루는 이라고 설득한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행하시는 일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모든 것들은 우연적인 일도 아니며 예수님이 스스로 고안하신 일도 아니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의논을 따라  역사 속에서 선지자의 입술로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로서 하나님의 뜻과 사랑과 능력과 섭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모든 기록들은
예수님께 가해진 어떤 의지의 억압이나 강요를 따라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를 따라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로 전개된 일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고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 하겠다

예수님의 언사와 행하신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한 것들이 산출되는 자연스런 문맥과 상황들이
억지로 꾸며낸 것들이 아니라 인간의 성정과 전혀 충돌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미리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역사적인 문맥과 정황이 만들어낸 결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의 지각에 쉽게 감지되고 인간 지성의 어설픈 논리적 구조에
대충 맞아 떨어지는 설명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태의 지표를  꺼풀만 제거해 보면
우연이란 용어를 적용할  있는 곳은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수학적 무작위성(randomness)' 개념도 머리 둘 곳이 없다.
물론 윌리엄 트위스(William Twisse)가
현상적인 실재에 기초하여 예리하게 구분한 것처럼 하나님의 작정이
필연적인 것들은 필연적인 방식으로 (necessarie),
우연적인 것들은 우연적인 방식으로 (libere),
자유로운 것들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casualiter)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편에서의 지각을 따라 그렇게 표상한다 할지라도
주체와 관점을 달리하여 오묘한 모든 것들이 속한 하나님 편에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연'이란 지극히 인간 인식적인 용어를 가지고
성경과 세계의 현상을 푸는 것에는 하나님의 신적인 개입을 거절하는
인간의 오만이 미묘하게 자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켜 기록된 구약의 성취라고 한다
도대체 어떠한 것을 하나님의 치밀하고 정확한 뜻과 섭리의 영역 밖으로
추방하는 무례를 범할 수 있단 말인가!

분초를 시험하며 머리털  올도 주님께서 새신다는 것은
그의 사랑과 섭리가 어디까지 적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표상이다
심지어  앗사리온 정도로 헐값에 매매되 새 한 마리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좋고 유익한 일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섭리라며 발빠르게 주장한다
그러나 죽음이 기다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떠나고
위로 받기를 거절할 정도로  고통의 눈물을 흐르게 하는 죽음의 슬픔도
하나님의 기록된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음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어떠한 예외도 없음을 확신한다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
운명론과 결정론의 흉하고 답답한 표정을 떠올리지 않아도
인간의 삶은 정말 고달프고 슬프고 안타깝고 괴롭고 까깝하다
스스로의 벗어날  없는 악하고 노예적인 본성을
진지하게 대면해  사람이라 한다면
운명론과 결정론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처한 인간 지성들의
불가피한 창조물이 분명하고 모든 시대를 풍미하지 않을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건강하지 못하고 옳지도 않은 해석이다
의지와 감정과 지성과 선택과 언어와 행위에 있어서
진실로 인간은 아무런 신적 억압이나 강요가 없이 완전한 자유를 누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론 내지는 결정론의 형태에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이 배제되면 이것보다  현실에 충실한 해석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 안에 있다
이것이 거부되는 어떠한 삶의 해석도 옳지 않다
이것에 근거해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도 오묘하고 깊어서
인간 지각으로  근원을 건드릴 수 있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의지나 생각이나 행동과는 결코 충돌될  없는 다른 차원이다
그럼 어떻게   차원을 연결할  있다는 말인가?
믿음이 비밀이다믿음으로 아는 방식이다

인식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의 삶과의 연관성은 믿음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믿음의 인식론 밖에서 구걸한 다른 방편들은 반드시 실패로 돌아간다
아무리 논리적인 정교함과 대중적 보편성 갖추었다 할지라도 까닭 없이 무너진다
믿음의 비밀신약과 구약의 구조와 연합도 그것에 의해 벗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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