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지식과 어리석음


Stay away from a foolish man, for you will not find knowledge on his lips

먼저 지식이 무엇인지 물어야 말씀이 풀어진다. 그러면 어리석은 자가 누구인지 자연스레 드러난다.

성경에서 지식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과 이어져 있다. 마지막 지식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지식은 '안다고 하나 마땅히 알아야 것을 모르는 경우' 일컫는다. 인터넷 중심의 의사소통 문화가 오래 전부터 정착하여 정보의 홍수라는 개념이 극도로 확대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출판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지식의 유통방식, 생각과 경험이 활자의 형태로 옮겨지는 시간이 찰나에 가깝다. 지식의 분량은 언제나 질적 저하를 수반하는 법이다. 선별하는 기준이 엄밀하지 않으면 정보의 홍수에 함몰되기 일수이다.

가장 고급한 지식을 선별하는 기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다

지식은 귀신들도 아는 그런 지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도 믿고 떨아야 했던 하나님의 아들이란 지식, 그것을 넘어선 지식은 무엇일까? 적용의 성격이 추가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의 몸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동시에 "나를 위해" 오셨다는 목적因을 놓치면 어떠한 지식도 나와 무관한 객체가 되어 버린다. 진정한 지식은 '그것이 나와 하나되는 적용의 성격' 포함한다.

그래서 가장 고급한 지식을 분별하는 기준은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이시며 동시에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적용에 있다.

이것을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교회에 은밀하게 잠입해 있는 순진한 양을 가장한 이리들의 거짓을 분별하지 못한다. 귀신처럼 예수님을 아는 놀라운 지식의 소유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가장 어렵게 만들고 갈갈이 찢어지게 만들 있다. 어리석은 자는 지식의 분량이 작은 자를 뜻하지 않는다. 지식의 부요함이 있으나 지식이 나와 하나되지 않고 지식이 나를 움직이는 운동력이 되지 않고 하나의 기구와 수단으로 전락할 , 그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자는 어리석은 자를 주님 아는 지식보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자로 규정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자라남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지식이 나를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까지 빚어가는 변화의 과정을 뜻한다보다 정확한 뉘앙스를 가진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길이에 있어서 자라가는 것을 말한다. 정말 지혜로운 자는 사랑하는 자이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사랑이 없다. 동물적 본성에 충실한 노예처럼 살아간다. 짐승의 가족보다 못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어리석은 자에게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피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을 멸시치 않는 자는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하셨잖아. 어리석은 자와 연약한 자는 구별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과 지식과 합일되는 것이 여기서도 기준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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