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바빙크의 De gemeene gratie 3

같은 기독교라 하더라도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과 화평할  없었다는 사실이 명백해 졌다종교개혁 정신은 로마의 신비주의가 생각에 있어서도 짐일 뿐만 아니라 양심과 구원에 있어서도 장애물과 짐이 된다는 것을 맛보았다종교개혁 운동은 정치적사회적과학적 운동이 아니었다그것은 종교적 윤리적 운동이며진정한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손에는 구원의 확신을다른 손에는 죄에 대한 지속적인 집착을 깨우치는 것은 루터의 의도가 아니었다오히려 종교개혁 운동은선행이 죄사함의 위로를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경험과 기쁨을구원과 복의 확신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선을 행하여 복을 받기에 합당하게 된다는 것은 행위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 합당한 것이었다그러나 죄의 출현으로 그런 공로는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이제 죄용서와 자녀됨과 의로움과 복은 하나님이 그의 은혜 안에서 그것들을 주실 때에만 우리의 것이다진실로 선행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우리의 자녀됨을 확신하게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다종은 보상을 바라고 일하지만 자녀의 삶은 감사에 기초한다선행은 신앙과 믿음의 열매를 전제한다나무의 본질이 바뀌면 좋은 열매는 자연히 뒤따른다(6:43-45).

이처럼 종교개혁 운동은 신비주의 종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은혜언약 위에  기초를 마련했다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과 은혜의 관계성을 설정하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믿음 없이는 선행에 대한 언사가 있을  없었다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존재 안에 있었으나 죄로 인하여 상실했다타락한 인간 안에 어떠한 선한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모든 생각과 언어와 행실이 죄로 오염되고 말았다자연적 인간에 대하여 개혁자들 입에서 쏟아진 정죄는 로마의 것보다  가혹했다고린도전서 2 14절에 나오는 ‘심령적 인간(De psychische mensch)’ 그들에 의해서 본질상 믿음의 신비들을 이해할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어두워짐 때문에 영적인 실체를 파악할  없는 죄인으로 여겨졌다. [칼빈은  ‘심령적 인간 ‘animalis humanus’ 이해했다 뜻을 다음과 같다.] 루터는 ‘이성(rede)’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는 어두운 전등과 같은 것으로 여겨 일평생 그것에 대하여 격분했다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어두움 이외에 어떠한 지식도 소유하지 못한 죽은 이교도로 경멸했다같은 맥락에서 협화신조(Formula Concordiae) 인간의 이성과 마음과 의지는 돌이나 나무 줄기나 진흙처럼 영적인 사안에 있어서 전적으로 부패하고 죽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은 자연인에 의해서 성취된 수많은 좋은 것들을 부정할  없었다루터란은  문제에 대하여 하늘의 것과 땅의 영적인 것과 감각적인 낮은 하반구와 높은 상반구의 엄밀한 구분을 만드는  외에 다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를 못하였다자연적 삶의 문제에 있어서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자유롭고 어떤 좋은 것을 행할  있다그러나 영적인 사안에 있어서 그것들은 전적으로눈이 멀었으며 무능하다여기서 자연과 초자연의 대립이 윤리적인 방향에서 다소 수정이 되었지만아직 로마 카톨릭의 이원론은 극복되지 않았다.

칼빈의 논리적조직적 정신은 이와 같은 이원론에 만족할  없었다한편으로그는 인간의 죄가 지극히 심오하고 심각해서 인간의 본성은 어떠한 영역이든 선한 것을 행할  없다고 규정한다죄를  자체로 내버려 두었다면모든 것들이 부패하고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그는 특별한 은총의 통치를 역사적 기독교의 경계 너머까지 확장하고 또한 그것이 이방인의 세계에도 역사하고 있다는 쯔빙글리 입장을 수용할  없었다어떠한 자연적 은사들과 덕들이 인간에게 용인된다 하더라도그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과 긍휼에 대한 지식과 같은  본질적인 것은 허용될  없다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인간 속에서 발견할  있는 진선미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것을 부인하는]것은 경험과 충돌될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물들의 부정을 수반하고 그를 향한 배은망덕이 초래될 것이다.

결국칼빈은 성경에 의지하고 그것에 호소하며 일반적인 은총과 특별한 은총모든 피조물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와 오직 믿는 자들에게 속한 성화의 사역을 구별하게 되었다하나님은 죄를  파괴적인 속성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그는 그의 피조물을 향한 목적을 가지셨고 타락 이후에도 계속 붙드셨다그는 일반적인 은총 내적으로 새롭게 하지 않으면서 제한하고 강요하는 은총을 죄와 창조 사이에 두셨다우리가 타락한 인간 속에서 발견하는 선을 포함하여좋고 참된 모든 것들은  은총에서 기원한 것이다빛은 어두움 속에서도 여전히 비추인다하나님의 영은 모든 피조물 안에 거하시며 행하신다.

하나님의 형상 조각들은 인간에게 남아 있다이해와 이성도 남아 있고 인간은 모든 종류의 자연적인 은사들을 소유하고 있다신성에 대한 느낌과 개념그리고 종교의 씨앗이 인간에게 있다이성은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이며철학은 하나님의 탁월한 은총이다음악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예술과 과학도 선하고 유용하며 위대한 가치를 가졌다정부도 하나님의 기관이다삶의 재화들도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도 즐겁게 만드는 것들이다그것들은 필요성(necessitatem) 위할 뿐만 아니라 즐거움(oblectamentum) 위한 것이기도 하다인간은 진리에 대한그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우리는 부모와 자녀를 묶어주는 자연적인 사랑을 알고 있다 지상적인 삶에 속한 것들에서 인간은 아직도 많은 선들을 성취할  있다칼빈이 제네바에 설립한 극도로 엄격한 훈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러한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마치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의 의지에 반하여서 발걸음이 끌려간 것처럼 그렇게  것이 아니다그는 가슴 벅찬 감사를 표하면서 그것을 열렬하게 승인했다빛의 아버지로부터 이러한 선과 완전한 은사들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면그는 성경과 충돌하여 엄청난 배은망덕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진실하게 개혁된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입장으로 간주되어 왔다이를테면장키우스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해당 챕터를 카피하는  외에 다른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았다물론 교의학에 있어서 그들은 일반은총 교리에  로쿠스를 할애하지 않았다그러나 Imago Dei 상실행위언약의 파기이교도의 덕들그리고 세속적 권력들의 권위에 대한 그들의 논의에서칼빈이 사용했던 설명의 방식들이 다시 나타났다 일반은총 교리에서개혁주의는 기독교 종교의 특별하고 절대적인 특성을 주장하는 한편하나님이 죄악된 인간에게 주시는 아름답고 고귀한 모든 것들을 수용했다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죄의 심각성과 자연적인 것의 합법성을 모두 인정했다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펠라기우스주의 뿐만 아니라 경건주의도 경계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재세례파와 소시니안 형태로 종교개혁과 나란히 발생한 편중된 사조의 성장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우리는   운동이 스스로를 일컬어 개혁주의 내지는 개신교로 명명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형식적소극적인 면에서그들은 분명 카톨릭을 저항한 무리들 중에 속한다그러나 본질적원리적적극적인 면에서 말한다면그들의 이원론은 종교 개혁자들 진영보다 카톨릭 진영에 더가깝다그들은 종교개혁과 함께 출범한 새로운 시대의 자손이 아니라 중세의 혈통을 물려 받은 자들이다그들은 로마 카톨릭 안에 오래 동안 있었던 경향들과 방향들의 연속일 뿐이다 그들의 영적 아버지는 로마의 후손이다라엘리우스와 파우스투스 소시누스는 모두 이탈리아 출신이다불신과 무관심과무신론은 종교개혁 오래 전부터 탄탄한 기반을 다져 왔다르네상스는 교회와 기독교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를 공급해 주었다믿음삼위일체성육신그리고 구속의 신비들은 날카로운 비평에 오랫동안 시달려 왔다법조계에 탁월한 두각을 드러낸 집안에 속한 라엘리우스는 그런 비평으로 베니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이후 파우스트는 전적으로 그의 아저씨 라엘리우스의 영향 아래 있었다소시니안주의는 유명한 종교적 현상을 넘어 귀족적인 지적 운동이었다그것은 특별히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폴란드 귀족층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재세례파는 중세의 종교적 운동과 현상과의 유사성을 보인다그러나 리츨이 재세례파를 전적으로 중세를 빗대어 설명하고 그것을 프란치스칸 회의 부활로 간주한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세례파에 고유한 특성들이 초기의 여러 계파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유의미한 일이다산상수훈의 문자주의적 해석맹세의 금지천년설계시록 천착세상도피 등과 같은 것들은 종교개혁 정신에 속하지 않은 것들이다그것들은 중세 카톨릭적 파생물일 뿐이다.

소시니안주의와 재세례파 모두는 카톨릭 시스템의  측면과 대립하게 되었다예전의 네스토리안들과 단성론자들이 같은 원리에서 상반된 결론을 도출했던 것처럼소시니안들과 재세례파는 동일하게 근원적 원리에서 상반된 입장으로 이끌리게 되었다모두 자연과 초자연의 조화 가능성을 부인한다모두 인성과 신성의 대립에서 나온 것들이다소시니안들은 초자연적 질서를 멸시하고재세례파는 자연적 질서를 동일하게 부정한다전자는 믿음의 핵심적인 신비들 삼위일체성육신그리고 구속을 비판하고 후자는 가족국가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사안들의 자연적 질서와 대립된 입장에  있었다.

소시니안들은 특별한 은총을 잘못 해석했고 자연 외에는 어떠한 것도 보존하려 하지 않았으며재세례파는 일반적인 은총을 멸시하고 은혜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이쪽 편에서는 그리스도 예수가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었고저쪽 편에서는 그가 진정한 인간이 아니었다소시니안들은 기독교의 고유한 것을 잃었다그들은 자연적 종교 외에 어떠한 것도 보유하지 못하였다인류는 주권으로이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타락 이후에도  형상을 상실하지 않았다원죄는 존재하지 않는다그리스도는 본질적인 어떠한 새로운 것도 추가하지 않았다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은 보상으로 불멸을 얻는다점차 자연적 종교는 초자연적 종교를 완전히 상실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반대로 재세례파 사람들은 창조를 폄하한다아담은 땅에 속하였고 육신적인 인간이다그와 같은 자연적 질서는 불결하다그러나 자신의 인성을 하늘에서 받은 그리스도 예수는 인간이 거듭날  새롭고 영적이고 거룩한 본체를 인간에게 주입해 준다거듭난 사람은 전적으로 새롭게 달라졌기 때문에 불신자와 어떠한 교류도 가져서는 안된다따라서 재세례파는 맹세전쟁행정관료사형제도세속적 옷차림과 스타일불신자와의 결혼그리고 유아세례 등을 거절한다초자연적 질서는 자연적 질서와 완전히 구별된다.

이처럼  그룹은 세상에 연합되고 다른  그룹은 세상을 도피한다 진영은 모두 종교 개혁자들을 충분히 나아가지 못한 것을 비판한다소시니안들은 종교 개혁자들이 카톨릭 교리를 철저하게 충분히 비판하지 않아서 불만이고재세례파는 종교 개혁자들이 카톨릭의 실천을 철저하게 충분히 비판하지 않아서 속았다고 느꼈다  운동들은 각자의 극단에서 합리주의적 요소들과 초자연주의적 요소들의 놀라운 융합 속에 수렴되어 갔다는 것이 놀랍다.

  흐름은 종교개혁 교회들 옆에 그들의 자리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교회 내에서도 무서운 영향력을 행사했다화란에서 소시니안들은 항론파를 통하여 기반을 다졌으며스피노자라는 인물을 통해 영국의 이신론에 영향을 끼쳤으며 데카르트라는 인물 안에서 독일과 화란의 합리주의 정신에 영향을미쳤다소시니안주의는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의 요람이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우리는 재세례파의 영향을 메노파 안에서 뿐만 아니라 라바디즘경경주의대륙의 모라비안 교도들독립주의침례파퀘이커 교도들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감리파 안에서도 발견할  있다 모든 운동에서 일반은총 교리는 거절 내지는 오해되어 왔다심지어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도 근원적인 개혁주의 원리가  모양  모양으로 약화되고 질적 저하가 발생했다합리론은 명목상 극복되어 온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복되지 않았다이와 유사하게 초기 재세례파 사상을 떠올리는 어떤 특성들도 소위 경건한 무리들에 의해서 진영에서 보존되어 왔다성경의 문자에 대한 멸시와 성령의 내적인 빛의 추앙말씀 사역자의 직무에 대한 폄하와 함께 즉각적인 권면의 말을 선호하는 교회와 언약성례식과 직무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식적인 규정을 멸시하는 닫힌 사회에 대한 선호예술과 연구와 학문과 문화와 지상적인 삶의 모든 좋은 것들의 거절그리고 가정과 기업과 국가에서 우리에게 놓여진 소명의 멸시 등등 모든 것들은 건강한 종교개혁 정신의 열매가 아니라 병적인 재세례파 전통의 유산이다.

[바빙크의 시대상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들어보자이러한 추세는 비단 기독교에 제한되지 않았다기독교와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던 사람들 안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패턴과 경향들을 발견한다인간은  세상이든  세상이든  목적지를 이탈할  형벌을 면치 못하는 법이다인간의 건강과 번영을 오로지 땅의 착취와 정복에 두었던 것은 불과   전부터 일어난 일이다세속화는  시대의 키워드다인간과 영원을 묶는 띠는 끊어져야 했다낙원은 인간을 위해  세상에 세워져야 했다초자연적 견지에서하나님과 종교는 인류의 원수가 되었다. “자연적인 것은 초신적(超神的) 것이 되어야만 했다(Le surnaturel serait le surdivin, 바빙크가 naturel surnaturel 표기한 것은 오류라고 Bolt 교수는 지적한다).” 자연은 하나님이 되었다예술과 연구와 학문과 산업은 예배와 섬김의 신령한 대상이 되었다.  문화는 종교적 의식을 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인도주의가 기독교를 대체했고 위생학이 도덕의 자리를차지했다.  연극 무대(tooneel) 교회가 지불해야  변제(vergoeding)였다레싱의 나단(Lessings Nathan) 성경을 위한 보상으로 간주된다성육신 교리는 인간의 신격화(de deificatie des menschen) 교리로 변형되고 말았다아직도 세기의 종말은 이르지 않았다 반대를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발견한다한편으로 우리는 고단함과 비참함을 목격하고 다른 한편으로 문화의 충족과 탐닉이 창궐하고 있다이문화에 대하여 걸었던 인간의 기대는 무너졌다희망은 절망과 의심으로 돌이켰다난관이 비관으로 돌아섰다이전에 사람들은 인간 본성의 고상함에 열광했고 남미나 아프리카 미개인(Vuurlander en Hottentot) 성품에도 경의를 표하였다이제 인간은 가장 개화된 문명인(Kulturmensch) 안에 야만성의 존재를 흐뭇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전에  아름다움 때문에 칭송을 받았고 성전으로 추앙되던 자연은 이제 혼돈과 충돌로 가득한 칙칙한 무대로 전락했다 격노한 요소들과 위협적인 힘은 인간의 생명을 위험으로 몰아 넣었다세상이 이보다  악화될  없을 정도이다선하고 현명한 절대자의 어떠한 행위도 눈먼 의지와  못하는 무의식의 산물일 뿐이다사람들이 모든 것을 기대했던 예술과 학문은 이제 형언할  없는 빈곤을 나타내고 그들의 도움과 위안을 요구하고 기대했던 바로  자리에서 좌초되고 말았다삶과 운명은 어떠한 지식에 의해서도 파악될  없는 신비가 되었다학문은 도처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우리의 지식도 유한하며 경험적인 세계의 경계를 넘어가지 못한다이처럼 값어치가 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이다열정이 사유를 대체하고 말았다느낌이 전부이고 지성은 아무것도 아니다의지의 힘은 헛되었고 행동은 정숙과 휴식을 취하였다명상은 능동적인 삶보다 높은 가치를 차지하게 되었다이런 방식으로아마 미지의 세계가 우리에게  비밀을 드러낼 지도 모르겠다불과   전까지만 해도사람들은 기적과 천사들과 모든 초자연적 요소들을 조롱했다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모두가 들어가고 돌아오지 못할 미지의 땅으로 가는 진입로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수단들(신령주의최면술신지학불교 ) 동원하고 있다신비로운 어두운 알려지지 않은 것들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날마다 이교적인 미신이 불신자들 중에 횡행하고 있다믿음은 미신이 자리를 잡기도 이전에 제거되고이성주의의 승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신비주의는 이미 왕관을 취하였다이처럼 금세기 (19C) 인간의 신격화와 유린 그리고 자연 숭배와 훼손은 희한한 방법으로 서로 얽히게 되었다모든 균형은 사라지고 삶의 조화도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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