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4일 일요일

Kenotic Christology를 생각한다


갈라디아서 1 1절을 주석하며 오리겐은 예수님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 예수는 사람이 아니라 거룩한 신성을 가지셨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사람에 의해 지명된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 오리겐의 설명이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지금 나는 기독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칼케돈 신조에서 예수님은 분명 위격 (persona) 안에 본성 (natura)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이라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이것을 지지하는 현대의 가지 이론은 마음 이론(The two-mind theory) 자기비하 이론(Kenotic theory)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 마음을 가지신 분이신가? 능력과 지식과 존재에 있어서 둘로 나뉘어 지시는 분인가?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람으로 죽은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신분으로 죽으신 것인가? 아니면 동시적인 신분으로 죽으신 것인가? 지혜와 지식이 자라난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성을 따라서 그러하고 신성을 따라서는 아니라는 말인가?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지식과 지헤의 문제에 있어서는 유효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성육신 이전과 이후와 부활하고 승천하신 이후로 나뉘어서 , 그리스도 예수는 누구신가? 그때그때 시간을 따라 변하신 분이신가? 아니면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신가? 신성과 인성을 지녔다는 말을 생각할 신성과 인성이란 단어의 언어적 분리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어도 서로 분리된 것처럼 의식하는 인간의 인지적 한계가 그리스도 예수의 본질(essentia) 이해함에 있어서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언어의 한계라는 말로 쉽게 지나갈 있는 문제는 아니다. 주님께서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분량과 깊이만큼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나아가는 일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에 모순이 없으면서 성경에서 언급한 이오타도 침묵으로 지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요즘 나는 특별히 자기비하 이론을 주목하고 있다. 아쉬움이 무진장 많은 이론이긴 하다. 멀러 교수님도 쿠퍼 교수님도 고개를 젖고 계시거든. 나두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걍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이론'이라 생각된다. 

칼빈 신학교에 존경하는 나의 스승으로 로널드 핀스트라 교수가 있다. 그분은 이론의 선봉에 계신 분이다. 그분은 칼케톤 신조를 수용하고 변증하는 입장에서 자기비하 이론을 주장하며 마음 이론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인격에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신성인가 인성인가? 시험을 당하시고 모르는 것이 있으시며 능력이 제한되어 있고 영광과 선에 있어서도 하늘의 아버지와 다르다는 언급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성에 국한된 것인가? 최소한 어거스틴 입장은 이것이다. 내려갈 없다. 그러나 본성과 의지를 가진 인격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는 믿지만 표현이 다소 막연하다.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그런 이해와 설명의 틀을 가지고는 풀어낼 없는 난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건강한 전통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오늘날 가증한 무리들이 던지는 사악한 물음에 침묵할 수만은 없기에 우리는 입술을 열어야 하고 일필을 가해야 한다.

오늘 수업에서 모리스의 마음 이론을 공부하며 그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모리스의 훌륭한 주장들이 간과되지 않도록 핀스트라 교수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리스의 탁월한 전략 중에서, mere human fully human, common human property essential human property, 그리고 individual-nature kind-nature 구분들이 기독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유용함을 강조했다. 이를테면, 예수님은 그냥 사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다. 표현에는그는 우리처럼 '그냥 사람' 아니라 '온전한 사람' 동시에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시험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은 시험을 받았지만 죄를 지으실 수는 없는 분이라고 한다. 하지(Hodge)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가 인간이면 그는 죄를 지으실 있었음에 틀림없다(capable of sinning). 그는 가장 약오름 속에서도 죄를 짓지 않으셨다. 그는 욕설을 들으면서 축복하신 분이다. 고통을 당하실 , 위협하지 않으셨다. 유혹은 지을 가능(possibility of sin) 내포하고 있다. 만약 그의 인격의 구성에서 죄짓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다면 그가 당한 유혹은 실재가 아니며(unreal) 효력도 없었을 것이며(without effect) 나아가 그의 백성들을 위로하실 없었을 것이다."

기독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과정에서 위로를 구절이 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11:27)."

그리스도 예수에 대하여 수는 없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아버지 외에는 누구도 없는 어떤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없다.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가면 갈수록 겸손의 허리를 굽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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