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바빙크의 De gemeene gratie 1

바빙크는 칼빈의 일반은총 교리가 오래동안 간과되고 왜곡되어 왔다고 생각한다아마도 칼빈이란 인물이 풍기는 엄격함과 완고함 때문에 일상적인 (common life) 결별한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바빙크는 자연과 은총의 관계에 대하여 다른 어떤 종교 개혁자들 중에서도 칼빈의 생각만큼 정확하고 심오한 견해는 발견하지 못하였다바빙크가 생각하는 일반은총 교리는 첫째 성경에 기초한 것이며로마 카톨릭 시스템은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종교개혁 시대에는 특별히 칼빈에 의해 재발굴 되었으며그 교리는 지금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슈바이쩌(Schweizer) 그의 , Dogmatik der evangelisch-reformierten Kirche에서 보여준 유용한 관찰을 소개한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사이의 특별한 차이점은 계시의 개념이 아니라 은혜의 개념에 있다." 물론 바빙크는 슈바이쩌가  올바른 주장을 자연적 종교와 초자연적 종교의 구분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삼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언약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계시가 아니라 은혜의 문제로 보았다는 통찰력은 높이 평가한다창조 자체는 하나님의 풍성한  계시이며모든 뒤따르는 계시의 기초요시작이다 창조와 관련하여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연적 지식으로 도달할  없는 명령을 주셨으며 여자를 돕는 배필로 주셨다 행위언약은 계시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목소리와 얼굴을 피하였고 죽음에 합당한 자가 되었다그렇다고 계시가 중단된 것은 아니라고 바빙크는 지적한다내용이 바뀌었다죽음이 합당한 자에게 주신 계시는 다른 아닌 은혜의 계시(eene openbaring van genade)였다타락 이후의 계시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요소는 바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ontferming en barmhartigheid Gods)라는것이다. [질문이 있다바빙크는 행위언약 체결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보는가죽음이 합당한 자에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내신 것은 은혜의 계시이고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  없었을 때에 드러내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는 말인가바빙크는  점에서 칼빈이든 다른 종교 개혁자든 나아가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 중에서  근거를 분명히 밝혀 주어야 했다아마도 행위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빙크 개인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

바빙크는 하나님의 은혜가 단일하지 않고 일반적인 (enn algemeene) 특별한 (eene bijzondere)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배경을 가인과 셋의 구별된 삶에서 찾는다카인이 살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계속 살아갈  있었던 것은 살인에 따른 엄중한 심판이 집행되지 않고 은혜가 그것을 대신했기 때문이라 한다가인은 세상을 정복하는 일을 했으며 문화(de cultuur) 발전에 돗을 올렸다.  이와 반대로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를 보존해 갔다. [여기서 바빙크는 일반적인 은총의 개념을 삶과 존재로 여기는  같다가인과 셋은 존재하며 살았다신자와 불신자가 모두 가진 은총이기 때문에일반적인 은총이라 칭한  같다셋의 후손들이 특별한 은총으로 구별된 것은 하나님 지식과 경배를 보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여기서는 바빙크의  은총에 대한 구별과 각각의 의미가 중요하다구별의 근거는 합당한 심판의 보류 내지는 은총에 의한 대체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 섞이어  땅으로 죄악이 관여하게 만들었고 이에 홍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그러나 노아를 통해 새로운 인류(andere menschheid) 출현했다그들의 존재와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de genade Gods) 이루어진 것이다왜냐하면 홍수로 죽음이 합당했던 심판을 모면했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한 그들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피조물의 존재와 삶을모든 살아있는 존재와 자연의 모든 것들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에 기초하여 세우셨다 삶과 존재는  이상 자연스런(natuurlijk)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 은혜(bovennatuurlijke genade)이다함과 야벳의 자손들은 은혜로 말미암아 산다노아이후에 인류의 하나됨은 회복되지 않았다오히려 언어의 혼잡으로 완전히 무너졌다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은 각각의 통로를 따라 흘러 내려갔다하나님의 신적인 인내와 참으심이 시작된 것이다망각의 시대도 함께 열렸다하나님은 열방이 각자의 길을 걷도록 허락해 주셨으나 자신을 증거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안에서 존재와 삶과 행함이 있다하나님은 자연의 질서와 움직임을 통하여 당신을 계시했다자연과 열방 중에서 모든 좋고 온전한 선물은 빛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다(James1:17). 모든 것을 창조하고 보존하고 계신 로고스는 세상에 들어와 사람들을 비추었다성령은 모든 생명과 모든 힘과 덕의 저자이다(Gen6:17; 7:15; Pss.33:6; 104:30; 139:2; Job32:8; Eccl.3:19). [여기서 바빙크는 일반적인 은총을 초자연적 은혜로 이해하는  같은 인상을 준다초자연적 은혜와 일반은총 개념의 차이는 무엇인가자연과 초자연의 장벽을 허문 장본인이 바빙크다그런데 지금 그는 자연과 초자연을 구분하며 모든 것이 초자연적 은혜라고 강변한다바빙크 자신의 논리에 따른다면그에게는 자연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모든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혜인 것이다초자연적 은혜 중에서도 특별한 은혜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방인 중에서도단순히 자연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양심과 삶과 역사 속에서도나아가 그들의글과 예술그리고 철학자와 개혁자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풍부한 계시가 발견된다이런 신적 계시를 멸시하거나 축소킬 이유가 없다소위 자연적 계시로 제한되지 말아야 한다낙원의 전통들가인과  후손들의 ,그리고 나아와 맺은 언약은 특별하고 초자연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다이방인의 세계에도  초자연적 힘의 역사는 불가능한 것도 개연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자연과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는 단순히 하나님의 덕들의 수동적 유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서의 능동적인 행위이다예수님의 아버지는 항상 일하신다(5:7). 그의 섭리는 거룩하고 영원하고 편재하는 능력(kracht)이다. [PRC 하나님의 섭리는 은혜가 아니라 힘이라고 주장한다바빙크는 여기서 PRC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그가 PRC 주장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  옳은 해석이다.]

이스라엘 종교와 세계 종교의 특별한 차이점은 계시의 개념과 관계된 것이 아니다 차이점을 계시종교와 자연종교 간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자연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다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실질적인 계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실재로 본질적인 차이는 은혜의 구분에 있다특별한 은혜(gratia specialis) 이방 민족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그들의 종교는 인간적인 의지의 산물이며 법적인 성격을 가진다그들의 구원은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정화금욕참회희생준법명상 등은 구원에 이르는 방법이다그들의 종교는 행위언약 파기에서 나온 부산물 내지는 퇴행물에 불과하다그러나 이스라엘 종교에는 특별한 은혜  하나님이 아브라함   후손과 맺은 은혜언약이라는 놀랍고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창조와 자연의 하나님엘로힘은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의 하나님 야훼로 알리셨다 계시는 이전 역사와이미 존재했던 하나님의 계시에 덧붙여진 것이다아브라함이  지파 태생이란 것은 우연이 아니다함과 야벳의 후손 중에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의식은 점차 약해졌고 그들 자신은 더욱 심각하게 세속화 되었으나,셈의 후손들은 오랫동안 순수하게 하나님 지식과 경배를 보전해 왔다지극히 높으신 분의 선지자는 언제나 샘족 출신이다.

이스라엘 종교는 아담과 노아와 셋과 셈의 가정에 기초해 있었던 인류의 근원적인 종교에 기반하여 세워졌다결국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능과 전지와 영원과 편재라는 속성들은 신약보다 구약에서  뚜렷하다.자연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들 창조와 섭리와 보존과 통치는 복음 전도자와 사도보다 선지자와 시편기자들에 의해서 훨씬  장엄하게 묘사되고 있다자연과 피조물 안에서의 기쁨에 대한 이해는 신약보다 구약의 책갈피에  풍부하고 강하게 담겨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이러한 것들은 비록 불가피한 전제요 필연적 요소지만 아직 이스라엘 신앙의 심장은 아니다그것은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동종관계 안으로 다가오실 때이며엘로힘이 자신을 야훼로 계시하실 때이다바빙크는 창조와 언약 체결하는 것을 이스라엘 종교가 기초하고 있는  기둥으로 간주한다이것은 이스라엘 신앙의 놀랍고 유일한 중심이다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 특별히 그의 기뻐하신 뜻을 따라 택하신 백성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열방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하나님은 그의 기뻐하신 뜻을 따라 하늘의 주관자와 땅의 거주민을 다스리고 계신 분이시다헤겔은 이스라엘 신앙을 극치의 종교(Religion der Erhabenheit)라고 말할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가난하고 비천한 백성의 수준으로 내려 오셨으며 모든 측면에서 실제로 사람처럼 되셨다사람의 말과 행동과 감정이 그의 성정 안에 주어졌다거룩하신 자가 인간적인 형상으로 내려 오셔서 이스라엘 종교와  이웃들의 종교 사이의 장벽은 사라진  같다다른 종교에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인간을 보지만여기서 우리는 인간을 찾으시고 그에게 자비로 오시는 하나님을 본다. “나는  하나님 여호와라.”

이스라엘 신앙의 본질은 다른 모든 것들이 부속되어 있는 은혜 언약에 있다하나님의 속성들은 결코 추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항상 종교적 도덕적 관점에서 묘사된다이스라엘의 샬롬과 구원은  하나님 안에서만 유일하게 찾아진다그는 유일하며이스라엘의 경건한 자를 위하여 최고의 선이시며그들의 방패와보상이며원천이요 샘이며바위와 안식처며빛과 구원이다(27:1). 하나님은 지극히 높임을 받으시며영원에 거하시며거룩하고 모든 피조물과 부정한 것에서 깨끗하신 분이시다동시에 그는 언약의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건네주신그들을 은혜로 선택하신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희생제를 통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신 분이시다그는 또한 건강과 축복의 저자이며이스라엘 백성들로 언약 안에서 살도록했으며그의 길을 따라 걷도록 했으며그들의 거룩하게 하사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영이시다(19:5-6). 역사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신앙의 본질은 점점 명확하게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과 성취를 발견하게 되었다그는 은혜언약의 궁극적인 내용이다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은 예만 되었다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며순수한 은혜시다새로운 율법 수여자도 아니고 새로운 법도 아니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온전하게 계시되고 온전하게 주어지신 야훼시다은혜는 신약 종교의 내용이며 자연과 피조물 안에서 보여 알게 되는 하나님의 속성들은 점점 희미하게 되었다. [성경의 어떤 구절이 바빙크의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것일까그는 여기서 특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생각에는 자연과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 나타내는 일의 정도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성경이 기록되고 완성되어 우리에게 주어져 있더라도 주님께서 창세부터 지금까지 자연을 통하여 보이시기 원하시는 계시의 내용은 조금도 가감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계시의 내용과 질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심지어 유추한다 할지라도입증해  성경 텍스트가 전무하다바빙크의 이런 주장이 그가 일반은총 교리를 전개하기 위한 어떤 장치로 언급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나  계시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모든 곳에서 전제되고 있다죄인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 안에서 그의 온전한 건강과 구원을 발견한다하나님이 자연과 가지는 관계성은 하나님과 교회 사이의 관계로 이전된다종교적 삶과 민족적인 삶의 일관성이 무너졌다은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경륜 아래서 제한된 모든 형태들과 무관하게 독립된 입지를 구축했다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지혜와 의와 거룩과 구속이 되신다구원의 사람의 일이 아니라 그의 아들 안에서 주시는 아버지의 선물이다.

복음은 순수한 은혜이다그것은 기독교 종교의 핵심이며 내용이다이스라엘 역사와 그리스도의 삶에서 심지어 일상적인 일들도 특별한 은혜를 가진 특별한 계시를 구성한다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자연법을 이탈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완전히 자연스런 현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기독교와 그것의 구별된 특징의 본질은 어떤 초자연적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은혜(goddelijke genade) 내용 안에 있다이처럼 일상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계시의 절정은 바로 눈이 있어서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마음의 생각도 능히 깨달을  없는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바빙크의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없다정말 놀랍다일반은총 교리에 있어서도 바빙크의 중요한 논지가 여기에 등장한다 예수님은 기독교의 핵심이며계시의 절정이며하나님의 최종적인 은혜 자체이다그런데  예수님은  땅에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생애를 통해 그런 은혜의 극치를 우리에게 나타내 주셨다는 것이다고통과 죽음은 인간의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적인 일상사다십자가는 상식적인 일과 신비로운 계시가 입맞추는 곳이다바빙크는 인간의 존재와  전체를 일반은총 영역으로 간주했다일반적인 은총과 특별한 은총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그러나 여기에 많은 공격적인 물음이 제기될 것이다.]

특별은총은 태초의 사람에서 시작하여 이전부터 준비되어  과정과 함께 생각할  온전히 이해될  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사람이다신약의 구약의 충만한 열매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계시되고 당신의 백성에게 자신을 주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드러난  은혜는 모든 사람들(voor alle menschen) 위하여 의도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인류를 위하여 선택된 것이다특별한 은총은 그것이 일반적인 은총(gratia communis) 의해서 보존되어   인류의 깊고 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서  자체를 위한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은 사실 그리스도 예수를 육신과 관련하여 세상으로 부르시기 위해 존재했다그래서 특별한 은총이 충만하게 드러나 보편적인(algemeen), 참으로 차고 넘치게(overvloedig) 되었다특별한 은총의 흐름은 솟아올라 이스라엘 민족의 제방을 범람하게 되었다 은총은 사방으로 흩어져  땅의 지면을 적시게 되었다이것이 바로 바울이 놀라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언급했던 신비이며 이방인도 하나님 집의 동일한 상속자가 되었다는 신비이다(3:6). 오랜 세월동안 나뉘어진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은 다시 연합을 이루었다그것들은 하나가 되어세계의기독인들 중에  길을 만들었다야생 올리브 나무가 좋은 올리브 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아브라함의 씨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은 축복을 받았다(12:3).

[바빙크의 설명은 은혜롭다그러나 ‘모든 사람들(alle menschen)’ 언급할  그가 의도하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바빙크는 모든 사람들을 택자나 유기자 모두로 생각하는 것일까아니면  세상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일까 땅의 사람들과 족속들과 나라들이 만약 아브라함의 씨에서 축복을 받았다면 분명 유기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그런데 바빙크의 뉘앙스는 굳이 ‘모든 사람들 그런 좁은 뜻으로 해석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남긴다일반적인 은총을 통해 준비되어  모든 사람들 중에는 분명 유기자도 있고 택자도 있을 것인데이런 구분을 굳이 언급하지 않으려는 약간 뒤로 물러선 느낌을 받았다그러나 바빙크가 말하는 ‘모든 사람들 택자와 유기자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단서가 있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이 ‘세계의기독교인 중에  길을 만들었다 것이다여기에 유기자나 불신자을 포함시킬 여지가 없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모든 사람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바빙크는 ‘alle menschen’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