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4일 일요일

Bavinck의 보편성 논의 4


바울이 선교여행 다니면서 세운 교회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없었다팔레스틴 안에 있는 교회들이 사도들을 통하여 하나로 연합된 것처럼이방인 교회들은 바울 안에서 그들의 통일성을 발견했다그들과 바울 사이에는 깊고 밀착된 관계성을 형성하고 있었다바울은  교회들의 설립자며그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변하지 않았으며정규적인 개별 방문을 통하여 교분을 나누었고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안부도 전해 주었다 교회에서 사역할 때에 그는 다른 교회에서 지원을 받았다나아가 여러 교회들이 인종적인 차원에서 또는 민족적인 차원에서 유대아시아갈라디아마케도니아 그리고 아카이아 교회들로 불리웠다.

사실 유대인과 이방인 교회 간의 관계성과 교통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이방인 교회는 예루살렘 안에서 살고있는 성도들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연보를 모았으며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졌던 적개심의 벽을 허물었다(11:29; 15:25-28; 고전16:1-5). 이러한 사랑의 선물들은 이방인이 동참하게  신령한 유익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그것들은 연합의 연습이며 유대인 성도들에 의해 동일하게 친밀한 반응으로 받아들여 졌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고후9:12-14). 진실로그때 다양한 교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영적 교제는 이후 노회와 대회에서 하나가  조직화된 교회들의 그것보다  친밀했다이러한 교제는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의 표지이며 교회의 가장 놀라운 서열보다  순전하고 영광스런 표지이다.

진실로 교회들 간의 이러한 영적 연대가 초대교회 시대에 없었다는 것은 생각할  없는 것이다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은 신약을 관통하고 있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테제이다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통일성성령의 통일성진리의 통일성언약의 통일성과 구원의 통일성에 기초한 것이다그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서우리에게 포도원양무리왕국신랑과 신부그리고 성전 또는 건물이란 이미지로 생생하게 그려 주었다예수님 자신도 이런 하나됨을 위해 기도를 드렸으며 그의 기도는 올려졌고 지금도 계속 올려지고 있다심지어 사도들의 시대에도 놓쳤던 통일성의 모든 부족한 부분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때가 차기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1세기의 교회는 출신에 있어서문화의 수준에 있어서국적과 지역에 따라서 달랐으며역사와 문화의 차이로 인하여 여러 세기동안 나뉘어져 있었다분리의 깊이 뿌리내린 적개심이 그들 사이에 있었다그러나 예수님은 평화를 주려고 오셨으며 자기 자신 안에서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결국 그들은 하나가 되었으며 그들도 그들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모두의 머리요 주님되신 아들의 은혜와 그들 모두에게 부어지신 동일한 성령의 교제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느꼈다그들은  세례와  믿음과  소망을 가졌으며  지체들과 성도들의 온전함을 위하여 배분된 각종 은사들을 가진 같은 몸의 여러 지체로서 하나가 되었다.

성경이 우리에게 묘사하고 초대 교회들이 우리에게 모본을 보인 교회의 이러한 보편성은 놀라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작은 교회나 집회의 좁은 테두리 안에 제한된 사람들은 이러한 () 모르고 있으며 그것의 힘과 위로를 경험한 적이 없다그런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와 성령의 교제를 속이고 있으며단순히 묵상과 헌신을 통해서는 맺어질  없는 영적 보화들의 손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그런 사람은 가난한 영혼을 가지게  것이다반대로 이것을 넘어 모든 열방과 민족과 시대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속된 허다한 무리들을 바라볼  있는 믿음의 강력한 기운과 창세부터 세상의 종말까지 모든 인류에서 부름을 받은 모든 군사적인 교회와의 연합을 알고 고난의 시대에 놀라운 위로를 경험한 그런 사람은 결코 좁은 생각과 마음을 품을  없다.

이처럼 사도들이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을 전면에 두고 모든 분리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발포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분열은 일찍이 1세기부터 편만한 위험이었다유대적영지주의적율법적그리고 반율법적 이단들이 교회로 들어왔다사실 교회가 통일성과 진리 모두에 대한 자의식적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각종 중상과 이단들의 출현은 불가피한 일이었다(18:7; 고전11: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파벌과 분쟁과 분열은 육의 죄악된 행위이며 열매였기 때문에 교회는 이에 대하여 집요하게 저항할 필요가 있었다(고전3:3; 11:18-19; 12:25). 사실 교회에 그러한 것들을 들여오는 자들을 저항하는 것은 거룩한 소명이다교리적 가르침과 교회의 통일성을 어지럽게 만드는 자들에게 교회가 권징을 사용하는 것은 옳은 것일뿐만 아니라 엄격한 책무이다교회는 스스로를 그런 것들에서 거리를   있도록 책망을 받아야 하고 이로써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이에서 보이듯이교회가 권징을 집행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과 팽팽한 대립을 조성하는것이 아니다 반대이다이는 교회에서 수행되는 권징의 목적이 파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그것은 결코 어떤 사람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될  없으며권징의 과정에서 교회의 절실한 기도는 주님께서 명하신 이런 마지막 극단적인 조치가 구세주의 사랑스런 돌보심을 받도록 완악하고 반항적인 죄인을  앞으로 이끄는데 있다. 권징에서 교회의 거룩은 드러날 것이며 보편성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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