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3일 토요일

Bavinck의 칼빈과 일반은총 1


칼빈과 일반은총 (Calvin and Common Grace) by Herman Bavinck

기독교는 시작부터 하나의 진정한 종교이길 요구했다여호와  분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며 이방인의 신들은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이라는 의식은 이미 구약에서 존재했다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가 유일하신  하나님  아들이 나타내고 선포하는 분이시며 그에게로 나아가 연합할  있도록 중재하는 분이시란 사실은 신약에 등장한다기독교 종교의 절대성에 대한 이런 확신은 교회의 의식 속에 그토록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마치 모든 종류의 반대와 부정에 맞서서  확신을 지키려는 하나의 거대한 저항처럼 보였다모든 개개인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교회의 생존과 관련해서 던져야  근원적인물음은 이것이다당신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이것은 고대 교회의 기독론적 인간론적 논쟁의 문제였고종교개혁 시대와 계몽주의 시대의 문제였고지금도 우리 자신이 목격하는 것처럼 오늘날 영적 전쟁의 화두이다이것에 있어서는 어떠한 진보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대들의 물음은 여전히 우리시대의 물음이다그리스도는 수많은 종교의 선생이며선지자며창시자들 중의 하나인가아니면 그는 아버지의 독생자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되고 완전한 계시인가?

만약 기독교가 그런 절대적인 속성을 지녔다면  사실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즉각 유발한다기독교 종교는 결코 역사의 유일한 내용일  없다기독교가 모습을 나타내기 이전에 그리스와 로마 안에는 이미 풍요로운 문화온전한 사회적 기관강력한 정체적 체계다양한 종교들그리고 도덕적 미덕들과 행위들의 요구가 있었다지금도기독교의 저변에 그리고 나란히 자연적인 삶의 부요한 지류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그럼 피조물 안에서 발생하고 그것에 부여된 법칙 속에서 세대를 거듭하여 발전하고 있는 자연적 삶의 이런 부요함과 기독교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무엇이 자연과 은총을창조와 재창조를문화와 기독교를지상적인 것과 천상적인 소명을일반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는가오늘날 세계 지식의 광범위한 팽창과우리의 비전의  속으로의 이방민족 침투그리고 문명화로 인한 특이한 진보 때문에 문제가 지금 처음으로 우리에게 부과되고 있다고  수는 없다본질적이고 원리적인 면에서그것은 모든 세대를 걸쳐 이스라엘 민족과 열방간의 싸움에서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권세 사이의 경쟁에서십자가의 미련함과 세상의 지혜 사이의 전쟁 속에서 던져진 물음이다.

 관계성을 규정하기 위해 성경은 추적하기 어렵지 않은 분명한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최고의 선이라는 원리에서 시작된다세상이 제공하는 어떤 물질적 이상적 소유이든 모든 것들의총체는 하나님과 연합이라는 최상의 보화를 능가할  없고 비교될 수도 없다 보화와 상충되는 경우그것들은 무조건 내버려야 한다. "하늘에서 내가 당신 외에는 누구를 바라리요당신 외에는 땅에서 사모할  없나이다." 그러나  말씀은 지성적인 소유물이 상대적인 가치 보유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자체로 고려될  그것은 죄악된 것도부정한 것도 아니다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왕국 추구하는 것을 침해하지 않는 감사한 마음으로 누려야 하는 것이다성경은  극단 금욕주의 못지 않게 자유주의적 극단을 동일하게 피하고 있다이것을 하나의 원리로 인식하는 경우가모든 것들  물질과 결혼과 노동을 포함하는 모든 귀중한 것들과 함께  세상이 하나님의 만드신 것이며 정하신 것이라는 가르침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참되고 온전한 인성을 취하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모든 것들을 내려 놓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통하여  모든 것들을 다시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고 성령을 통하여 정결하게  것으로 되돌려 받았다는 가르침 안에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창조와 성육신과 부활은 기독교의본질적인 기초이며 동시에 삶과 교리에 있어서 모든 오류를 막아내는 방벽이다.

사실 초기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 시대의 문화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는 없다그때 그들은 국가와 사화  학문과 예술 분야에 적극적인 참여를 시도할 만큼 숫자에 있어서나 영향력에 있어서 결코 충분하지 못하였다게다가 문화의 모든 기관들과 요소들이 우상 숭배하는 것과 미신에 은밀하게 결탁되어 있어서 양심의 격력한 저항 없이는 그것들에 참여할  없는 때였다. 1세기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로마 세계에서 핍박과 비방 외에는 어떤 것도 기대하지 못하였다결국 순종과 인내라는 소극적인 미덕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명백하게 유지하는  외에 어떠한 것도 선호될  없었다교회는 계속 성장하여 모든 것들을 시도하고 선한 것들을 붙들고 현존하는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절차를 채택하는 보다 개선된 입장에 점차 들어서게 되었다.

과거에는 가끔지금 우리의 시대에 또다시 기독교 교회를 고발하는 것은적용에 있어서  원리가 본래적인 복음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하르낙(Harnack) 교리의 역사에서 원래 기독교의 점진적인 헬레니즘 경향을 발견한다헷치(Hatch)  기독교의 예식특별히 성례식을 원초적인 복음에서 퇴보된 것으로 이해한다(Sohm) 교회법의 이념이 기독교 교회의 본질과 상충되는 것으로 본다그러나 그런 주장들은 총체적 과장에 연루되어 있다만약  모든 관점에서 단지 퇴보만 있었다고 한다면최근 학자들이 쉽게 인지할  있듯이 퇴보는 사도들과 공관복음 저자들과 함께 상당한 수준으로 일어났던 것임을 보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진실로 기독교 교회는 원초적인 복음을 왜곡시킨 것에 대해 책임 추궁을 당하고 있다그러나 그렇게 추궁하는 자들은 실제로  복음의 어떠한 것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있거나최소한 무엇이  복음에 담겨 있는지도 말할  없는 자들이다.  그것은 대체로 금욕적인 색조를  단순한 도덕론 정도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복음은특별히 문화로부터 타락을 경험할 정도로어떻게 문화와의 실질적인 접촉이 가능할  있었는가이처럼 원복음과 이방인 문화를 향한 기독교 교회의 태도와 관련하여전적으로 망상에 기초하고 모든 사실과 대립되는 하나의 개념이 형성된다왜냐하면 복음은 금욕적인 것이아닐 뿐만 아니라 최소한 1세기의 기독교 교회는 이런 관점을 전혀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때의 교회가 아무리 이교적인 정신에 맞서 경계했다 하더라도 자연적인 삶을  자체가 죄악된 것이라고 결코 얕보거나 정죄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가정생활세속적인 소명과 군대계급맹세와 전쟁수행과학과 예술과 철학 모든 것들은 시작부터 거룩한 기관이요 신령한 은사로 여겨졌다이런 맥락에서 신학은 철학카타콤 동굴에서 행해졌고  자체가 고대성의 상징과 표지로 간주된 회화예술이방인의 모델을 따라 교회를 짓는 건축술그리스 로마 예술이 산출한 음정들을 이용한 음악 등등과 일찍부터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새로운 종교를 기존의 모든 문화적 요소들과 연결을 지으려는 노력들이 사방에서 감지된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창조자며 자신을 이방에 결코 증거하지 않으신 분이 아니라는 그들의 확고한 신념 때문에 그렇게   있었다다소 훼손된 형태라 할지라도 본래의 계시가 그래도 전통에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어떤 철학자는 상당한 정도까지 유대인의 문헌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도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게다가 이교적인 정신에도 마음과 양심 안에 본성과 이성을 통한 지속적인 계시와은혜의 감추어진 역사를 통해 로고스의 조명과 하나님의 지혜에서 오는 언사들도 있었다생명은  자체로 기독교적인 것이며 (anima naturaliter Christiana), 인간은 철학자나 시인보다  일찍이 모든 자들의 마음에 살아있는 진리를 형성해 왔다고 터툴리안은 외쳤다물론 이방인 중에서 이런 지혜가 여러 측면에서 왜곡되고 뒤틀려 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그들은 하나의 완전하고 충분한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지극히 부분적인 것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그러나 그런 진리의 조각이라 할지라도 유익하며 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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